입맞춤
설아, 괜찮은거지? 일단 내 방으로 가자. (이마와 볼에 서늘한 손을 대어보고 걱정스러운 낯을 띤다.)
음, 기분은 좋아요.
(정말 그런 듯, 웃음이 잦았다. 당신의 손에 뺨을 기댔다가 손바닥 안을 핥짝거려본다. 음, 입술과 다르게 포도맛은 안 나는구나. 슴벅이다가 일어나 밖으로 향한다. 걸음은 또 똑바르다.)
(손바닥에 촉촉한 살덩이 훑고 지나가자 숨을 흣 들이마신다. 정말로, 흐트러질건 첫 모금에서 이미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취할줄은 몰랐으니.)
강아지 같아.
(저도 모르게 웅얼거리며 혹여 넘어질까봐 네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고 걸음 옮긴다. 은총이의 방에서 제 방까지의 거리는 몇 걸음 걸리지 않았다.)
처음 먹어보는거야? 술?
(강아지? 이건 또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아닌가. 몇 걸음 걸어 당신의 방에 오면 익숙한 향이 저를 편안하게 한다. 끄덕이는 귓가가 한결 더 붉어진다. 술. 제가 먹은 게 술이었구나.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더라. 와중에 강아지에 꽂혀서, 신발을 벗기 위해 현관에 앉은 채로 당신을 올려다보게 된다.)
강아지 같으면, 지금보다 더 예뻐해주세요. 목줄도 채워주고. 쓰다듬어주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목줄하니까 또 생각났는데.)
저한테 입 맞춰주시면 안돼요?
(제 발치에 주저 앉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예뻐해달라며, 쓰다듬어달라며 애원하는 저 젖은 눈을 어떻게 할까.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너를 내려다보는 두 눈에 갈증이 서린다. 마른 침을 삼키고 네 볼로 손을 내린다. 서늘한 손 끝이 보드라운 솜털을 찬찬히 훑어내려가더니 하얀 목덜미 위를 간질이듯 만져본다. 정말 네 애원대로 이 곳에. 붉은 제 낙인을 걸어두면 너는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가늠하듯이 그 둘레를 감은 손에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짝 힘이 들어간다. 아, 이러다 너를 삼킬 것 같았다.)
설이는 여기에 목줄 걸면, 어울릴 것 같긴 해.
(조심스럽게 고개 내려 다시 포도색으로 물든 하순을 머금어본다. 달게 말라붙은 향이 중독적이라 혀를 내어 꼼꼼하게 훑게 된다. 살짝 떨어진 입술이 예뻐, 하고 소중하게 속삭였다.)
읏.
(당신의 손길이 간지러웠는지 헛숨을 뱉는다. 이전에는 어떻게 참았던건지, 혹은 제가 당신의 손길에 예민해진 것인지. 당신은 제가 그 목줄을 얼마나 애타게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간을 보는 것 같아서. 차라리 제발하고 빌고 싶은 마음인데도. 당신이 제 아랫입술을 머금으면 저는 당신의 윗입술을 자연히 물게 된다. 다시 저를 적시는 포도향에 정신이 아찔하다. 예쁘다는 말이 그저 좋아서. 혀를 내밀어 당신의 입술을 핥짝거려본다.)
지금 저한테 목줄도 채우고 도장도 찍은거에요.
(제 목을 감싼 당신의 손 쓸어올리다가 당신의 양 볼을 감싼다. 고개를 길게 빼곤 제 입술로 꾹 당신의 구순을 누른다. 그러니까, 우리 사귀는 사이 맞죠? 흘리는 속삭임에서 이전의 친구라는 언급이 내심 속상했음이 술김에 잔뜩 묻어나왔다.)
(깊게 들이밀지도 못한 채 얕게 제 입술을 핥짝이는 모습 마저 강아지의 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오른 입술 사이로 흐흐 웃음 흘린다. 목줄과 도장을 이토록 간절히 바라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인지 이런 네가 더욱 새롭게 보였다. 나는 과연 너에게 좋은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속상한 음성이 나오면 그런 상념은 곧 깨진다. 아, 너무 솔직해서 큰일이야 너는. 여즉이 부드럽게 미소 머금고 되물었다.)
설아, 내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런 걸 물어.
(술기운 탓인가 이해가 조금 느려 반응도 한 박자 느렸다. 표정에 번지는 명학한 설움. 제 목에 감긴 당신의 손목을 확 잡아당겨 당신을 품에 가둔다.)
형이 아니라고 하면. 기다릴 순 있어요. 얌전히 기다려야하는 것도 알긴 하는데.
(저는 여전히 좋은 후배이기만 하고 싶은가. 글쎄, 요즘들어 다른 마음도 드는 것 같았다. 포도주에 물든 것 마냥 선명한 마음, 예컨대 당신을 삼키고, 삼켜지고 싶다는 그런 마음. 당신의 귀를 핥고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어보면 도톰한 살에 박힌 동그란 구슬이 장난처럼 당신을 자극한다. 이젠 숨기지도 않는, 서운한 티가 팍팍 나는 그런 목소리로.)
방금 저랑 입술도장도 찍었으면서. 진짜로요?
(또 울망한 눈으로 너를 올려다볼 네 얼굴이 궁금해서, 그런 못된 생각으로 장난처럼 물었던 질문이었건만 꽤 강한 손아귀에 잡혀 당겨지면 몸의 균형을 잃고 너와 함께 주춤 무너진다. 머리가 사락거리며 네게 스치고 너무 붙어버린 몸을 살짝 때려는 순간, 축축한 혓덩이가 제 귀를 훑는다. 그 오싹하고 간지러운 느낌에 저도 모르게 힉, 숨을 들이키며 바짝 몸을 움츠린다.)
아, 흐, 간지러. 널 너무... 놀렸을까? 그래도 내 강아지 하기로 했으면 기다려, 도 잘 해야지.
(너와 몸을 반쯤 겹친 채 바닥에 주저않아 어깨를 움츠린다. 귀에 달그락거리는 소음을 내는 이건 뭘까. 네 뒷머리로 손을 얽어 살짝 때어내고 혀로 시선 향했다. 찾던 것이 보이지 않자 네 하악을 쥐고 입을 살짝 벌려 그 안을 살폈고.)
이거... 아까 그거 뭐야?
(으음, 성음을 내며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가. 와인에 젖은 머리는 잘 굴러가지도 않았고. 와중에 당신이 내는 소리에 얼굴을 붉힌다. 내 강아지라는 말도 마음에 들었는지 천천히 허리를 옥죄던 팔의 힘이 풀린다.)
(당신의 놀라움이 저에게도 전염되어서 동그래진 눈을 한 채 당신을 본다. 음, 이건 장난을 쳐도 된다는 뜻인걸까? 아직 키스까진 허락을 받지 못했는데.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숙여 턱을 쥐고있는 당신의 엄지를 입에 담는다. 축축한 혀를 내밀어 당신의 마디를 느릿하게 핥아올리면 금속 구가 당신을 꾸욱 누른다. 현관의 등 아래에, 당신의 손가락과 제 혀 사이. 은빛 장신구가 반짝인다. 그대로 고개를 뒤로 빼면 은사가 주욱 늘어나다가 툭 끊긴다. 그걸 제 혀로 핥아내면, 마치 거짓처럼 얌전한 입술이 닫힌다. 풀린 눈에 무덤덤한 낯으로 고민 하기를,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러고 보면 아는 이가 없긴 했다.)
음, 마음에 드세요?
(아, 손가락을 물고 빠는 야살스런 감각이 팔과 등을 타고 올라 작은 탄성을 흘리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피어싱이구나. 금속 구를 가지고 놀듯 미끄덩힌 혀 한가운데를 엄지로 살살 굴려본다. 네 혀는 마치 그 때 함께 나눠먹은 푸딩처럼 말캉해서 맛도 꼭 그러할까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리고 손가락 뿐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핥아올리는 네 얼굴이 자꾸만 상상되어서. 아랫배로 열이 뻐근하게 몰리는 감각까지 주체할 수 없었다. 미끈한 타액이 제 손을 막처럼 둘러싸고 떨어지면 그런 모든 생각이 감춰져 그늘진 그의 눈이 드러난다.)
여태 전혀 몰랐어. 뽀뽀 할 때도...
(궁금증을 더 해소해달라는 듯 혀로 내리깔린 제 시선을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고개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네 입술과 다시 닿기 전에 작게 속삭인다.)
키스, 해도 될까?
이후로 말을 안했으니까, 당연해요.
(당신의 속도 모르고 잘게 웃음소리를 흘리다가 드디어 떨어진 허락에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으로 당신의 양 볼을 감싼다. 손가락을 뻗어 살살 당신의 머리를 걷어내면 어여쁜 눈동자가 드러난다. 사탕을 빨 듯 쪼옥 소리를 내며 당신의 윗입술을 당겼다가 마음껏 맛보라는 듯 제 혀를 당신의 입 안 깊숙히 밀어 넣는다. 하순을 긁으며 미끄러진 혀는 구석구석 간지럽히며 집요하게 탐닉했다.)
흐,
(어설픈 만큼이나 달뜬 호흡이 잇새로 새어나간다. 당신의 입술에서 나는 향만으로도 취하는 것 같아서. 풀린 눈이 달아올라 흐릿하다. 당신의 설을 긁는 만큼, 넘어오는 농밀한 타액을 삼키느라 숨이 찼다.)
으응, 츱... 흣.
(아, 버겁다. 입 안에 가득 밀고들어와 제 숨을 막는 혀도 그렇고, 여태 한참을 참았다는 듯 한 치도 물림 없이 집요하게 제 혀를 빨아대는 네 모습이. 목과 어깨로 홧홧 기운이 퍼지는걸 애써 무시하며 맞물린 고개를 틀었다. 두툼한 혓덩이를 쪼옥 빨아당겼다가 그 한가운데 박힌 구를 혀로 툭툭 밀어본다. 끈적한 액에 감긴 피어싱이 이에 부딪히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목구멍 너머로 사라진다. 꽤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양 앞으로도 너를 이걸로 괴롭히게 되겠지. 네 혀도 나름 꼼꼼하게 입 안을 훑는 듯 했으나 그러면서도 부자연스러운 호흡 조절과 한없이 벌어진 입이 너의 경험을 짐작하게 했다. 그게 저를 더 흥분하게 해서, 네게 숨 쉴 틈을 주는 걸 잊어버리고 그대로 혀 안 쪽부터 입천장, 치열까지 이어 고루 훑어버린다. 허리 둘레에 감은 손은 옷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뜨끈한 살결의 감촉을 즐기며 천천히 허리춤을 쓰다듬듯 어루었다.)
(당신의 장난에 힘이 풀렸는지 뺨을 따라 흐른 손이 당신의 목덜미를 껴안 듯 겨우 걸쳤다. 안경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나, 그대로 뒤로 밀려나 제 후드에 폭 기대어지는 소리 모두 당신이 저를 가지고 노는 습윤한 소리에 묻힌다. 제 입을 잠구던 자물쇠 역할을 하던 것을 당신이 흔들면 삼키지 못한 열띤 소리가 새어나온다.지나치게 달고 자극적이라 타액이 제 볼을 따라 흐르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숨을 할딱이며 따라가느라 제 허리로 미끄러진 당신을 느끼고서야 반응한다.)
아,윽,
(차, 가워. 입 안을 침범한 당신의 붉은 혀에 성음이 완성되지 못한 채 신음으로 조각난다. 꼭 감았던 눈을 겨우 뜨며 마치 삽입처럼 들어찬 살덩이를 넓게 감싼 혀로 살살 긁어올린다. 당신이 들여온 찬공기조차 전희가 되니, 그 온도에 파르르 떨면서도, 움직이기 쉽도록 땀에 젖은 허리를 들어 올리면 당신의 몸과 부딪친다. 내 강아지라는 말이 얼마나 야했는지, 뻐근하던 아래가 그것만으로도 묵직해지는 것 같았다. 단지 당신이 눈치챘을까 부끄러워 목덜미까지 홍조가 번진다.)
(거슬리는 안경을 살며시 잡아 벗겨내준다. 두꺼운 가림막이 벗겨지면 그것이 마치 너의 가면이라도 된 양 빨갛게 달은 얼굴이 더욱 솔직해진다. 손이 허리춤과 가슴의 말랑한 살결을 욕망대로 만지는 동안 입에서 새는 신음이 제 귀에 하나하나 새겨진다. 너가 아래에. 그리고 그 위로 제 몸이 겹쳤으니, 손으로 바닥을 짚어 네가 무겁지 않게 자세를 조정하면 발치에 신발이 닿아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현관에서부터 이렇게 자제력이 무너져 내릴줄은 몰랐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너는 계속해서 제 혀를 당기며 갈구하고 있었고 저도 이제 와서 물러날 자신은 없었다. 특히나 너가 허리를 들어 하체가 서로 부벼지면, 뜨거울 정도로 옷 아래 불거진 네 것을 못 알아챌 정도로 둔하진 않아서. 물린 잇새로 작게 웃음소리 흐른다. 그래, 아무리 어리고 순수해도 너도 알 건 다 알 나이인데. 어리게만 본 너라도 몸은 솔직하게 달아오른다는 사실에 또한번 흥분감이 오른다.)
흐... 설이 귀여워 여기.
(그러나 차마 직접 손 대지는 못하고, 아래로 무게를 조금 실어앉아 지금 너와 내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만은 알려준다. 너와 나의 엉킨 타액으로 젖은 뺨을 쓸어주고 바닥으로 흩뿌려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찬찬히 마음을 다잡는다. 이대로 너를 먹어버리면 스스로가 후회할 것 같아서. 찬 바닥에 아무것도 모르는 너를 눕히고 마음껏 탐하는 것은 꿈이라도 허용하기 어려웠다. 대신 아까 지나친 서운한 마음을 도로 주워본다.)
기다리게 하는 나쁜 형은 안 하고 싶어.
...우리 사귀자. 그렇게 하자.
(옷 안의 손이 나와서 네 손을 꼬옥 깍지 잡으면 거기에 증표처럼 걸린 은붙이가 서로 긇히는 소음이 난다.)
(안경이 벗겨지는 것이 싫어 살짝 틀어보지만, 당신의 혀를 더욱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미약하게 거부한 이유는 하나, 제멋대로 날뛰는 흥분을 고스란히 보여줘야한다는 것이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게 입을 맞추고 집중하는 당신이 흐릿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흐읏..아, 혀엉,
(목이 타서, 당신을 더욱 원해서. 애가 타 조르는 듯한 목소리가 늘어진다. 당신의 손길이 술기운을 걷어가고 흥분만 남긴다. 소리를 참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행위였나. 맞닿은 골반에서부터 목 안 쪽까지 내달린 열기에 신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손짓을 따라 흐드러진 신음을 질질 흘리다보면 가슴의 첨단이 빳빳해져 괴로웠다. 분명 제게 돋아난 것은 혀의 피어싱 뿐이었는데. 제 가슴 또한 한참을 부풀어있을 것 같아서. 당신이 좀 더 만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정말 당신 앞에 배를 깐 개마냥, 입을 벌리고 색색 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자면, 당신의 손이 제 머리를 쓰다듬는다. 열이 오른 잔뜩 저와 달리 당신의 손은 비교적 서늘했고, 저도 당신에게 기대어 찬찬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스스로 나쁜 형이 되고 싶지 않다는 당신은 어떤 표정이지. 그게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저와 교제를 약속하는 표정도. 흐리게 색과 형체 정도만 볼 수 있었으므로.)
기다렸어요.
(사귀자는 말. 저를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당신에게서 듣기를 언제나 기다리는 말이기에. 고대하던 말을 듣자 술기운이 날아가고 제 꼴을 알아 파드득 몸을 떤다. 흥분이 채 가라앉지 못해 잔뜩 붉어진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차라리 안경이 벗겨져 현관의 거울을 제가 볼 수 없음이 다행이었다. 당신의 아래에 깔려 잔뜩 붉음이 핀 자신을 보면 아예 익어버릴 것 같았다. 아쉬움에 당신의 손을 갉작이면서도 슬며시 말려올라간 제 후드를 아래로 잡아당긴다.)
그래도, 사귀는 사이니까. 형 침대에서 자고 가도 되나요? 그냥, 이야기만 하다 잘게요. 진짜에요.
(그 흔한 호칭이 대체 뭐라고. 길게 늘어지는 너의 칭얼거림을 듣자 가라앉아야만 하는 흥분감이 다시 꿈틀거린다. 점점 술이 깨는 듯한 너는 더욱 빨개지기만 한다. 얌전히 제 아래 깔려서 올려다보는 저 모습이, 드러난 살결이 다시 옷 아래 덮여도 야시시한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가이딩을 위해 남과 살을 무수히 맞대었으니 이토록 적은 접촉으로 온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난 적이 없어서. 너는 나를 다양하게 바꾸어 놓는가보다. 수줍게 피어난 미소 위로 소중하게 입술을 쪽 내리고 너를 찬찬히 일으켜 세운다. 안경을 다시 주워서 콧대 위로 올려주고, 뒷 머리를 조금 골라주고. 그러는 제 얼굴은 아마도, 너만큼 붉게 달아오른 채 욕망을 간신히 눌러 침전한 낯빛일터다.)
으응. 침대로 가자.
(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펠, 자신 있어? 한편으로 마음 속 음성이 비웃듯 되묻지만 이미 몸은 너를 안아 잘 정돈된 시트 위로 눕혀준 뒤다. 그 옆에 나란히 침대 위에 몸을 뉘이고 이불을 함께 나누었다. 기껏해야 한 뼘 정도의 거리가 둘 사이를 갈랐고, 한 베개에 두 고개를 올리면 입술을 나눠먹은 아까만큼 가까워져있다.)
(당신의 품에 안겨 앓는 소리를 겨우 삼키고 나면 포근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거기서 우리가 멈추지 않았다면 다음날 그는 잔뜩 부운 입술과 몸을 가지고 낑낑댔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술은 늦었을지도. 물론 저는 그마저도 좋아했겠지만, 당신이 그런 저마저 예뻐해줄지 모르겠어서. 어쨌든 잠을 자야할 터이니, 안경을 벗어두곤 당신을 향해 돌아눕는다. 어둑해진 실내. 기억으로 그려보는 흐릿한 당신의 얼굴. 당신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형 품에 안긴 거 같아요.
(저를 둘러싼 모든 곳에서, 당신의 향이 났다. 꽃을 닮아 싱그러우면서도 연기를 닮아 차분해지는 향. 그런 냄새에 휩쌓여 아래를 적시는 저는, 당신의 말대로 짐승이라도 된걸까. 아까의 자극을 마음껏 느끼고 싶기도 했고, 당신을 기다려주고 싶기도 했다. 정신을 돌려보고자 당신과 시선을 맞추려고 하면 붉은 입술과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의 색만 선명하니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마치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앞에 두고 기다려야하는 개가 된 심정. 저는 이렇게 발랑 까진 이가 아니었는데도,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 마음에 당신의 손을 올려 그 끝에 쪽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부빈다. 그렇게라도 제 마음을 돌려보려고.)
(손가락에 보드라운 입술이 오물거리는게 간지러워서 흐흐 웃는다. 손 끝을 타고 전율이 잔잔하게 넘어오니 또 한번 따뜻한 점막을 가르고 들어가고픈 충동이 일어 눈을 잠시 감는다. 아, 이래선 밤을 꼴딱 세우겠다는 걸. 대신 손 끝에 힘을 실어 검지로 입술을 꾹 누르더니 결국 고개 드밀어 그 위로 입술을 가벼이 눌렀다.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어둠 속에 퍼진다.)
정말로, 설이는 키스도 내가 처음인거야? 나 너무 소중한 걸 가져가버린 것 같아.
네. 보통은, 점막 가이딩까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요.
(발음에 따라 팽창하고 움직이는 입술이 당신에게 느껴지려나. 제 입에 묻은 포도향에 당신도 물들려나. 혹여 손을 떼는 게 아쉬워 당신을 꼭 붙들게 된다. 그렇게 소중한지 잘 모르겠다. 자신은 이미 더한 것도 줄 각오를 했는데.)
저는 후회 안해요. 앞으로도 안할 거예요.
설이는 가이딩 효율이 좋은가봐.
(붙잡힌 손이 가지말라며 부탁하는 것 같아서 계속해서 입술을 지분거리게 된다. 조금 곁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볼의 보드라운 솜털도 살살 쓸어보고. 다시 다가온 입술은 너의 이마 위로 꾹 눌린다.)
기뻐. 너의 처음이 될 수 있어서.
대강, 계산해서 받으니까요. ...가이드가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거기까지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두운 방에 당신의 향에 노곤하여 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된다. 이마에 살포시 닿는 감촉에 당신의 기쁘다는 말까지, 안도의 숨을 뱉는다.)
걱정했어요. 후회하신다고.. 할까봐.
후회...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럴리가. 고개를 살살 저으니 복슬거리는 머리칼이 베개에 비벼지는 소리가 난다. 와중에 가이딩 수치가 계산이 된다는게 신기해서 눈을 두어번 깜박인다.)
계산까지 할 정도로 가이딩을 싫어하는거야?
그건 아닌데, 그쪽이 효율적이라.
(말을 느릿하게 이으며 고민해본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당신의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천천히 입을 뗀다.)
가끔, 형이 저랑 만난 것 자체를 후회하시는 것 같아서요. 전 진짜, 다 괜찮은데.
(입술을 매만지던 손길이 멈춘다. 정말로 네가 그렇게 느껴왔다면 그건 명백한 제 잘못이니까. 죄책감에 짓눌린 마음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었구나. 씁쓸하게 시선 내리 깔았다.)
너는 내 행운인걸. 그치만... 너에게도 내가 그런진 모르겠어. 내가 저지른게 있으니까. 날 만나지 않았더라면...
(너가 더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뒷말을 삼킨다.)
(당신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자, 부러 손 끝에 쪽 소리를 내며 관심을 끈다. 그러곤 당신이 삼킨 말 또한 꼭 듣고야 말겠다는 듯, 당신에게 가볍게 입술을 부딪친다.)
말해주세요.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은데요?
...흐흐, 아냐.
(때로는 말하지 않는게 더 좋은 말들이 있다. 더군다가 너는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고. 괜히 관심을 돌리듯이 가벼이 부딪힌 입술을 다시 쫓아 꾸욱 꾹 눌렀다.)
(당신의 입술이 가까워지면 저도 더욱 붙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당신의 목 아래에 팔을 뻗어넣고 다른 쪽 뺨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몸을 바싹 붙인다. 이어지는 마찰음과 나직하게 내어 보는 성음.)
전, 지금이 더 좋아요. 어떤 길을 걸어도 형을 만났을 거에요.
(목을 둘러안은 것처럼 네 팔에 감기자 저도 네 허리로 손을 스르르 둘렀다. 다리도 네게 꼭 끼워맞추듯이 사이로 들이밀었는데, 순간 허벅다리에 단단한 것이 눌려 작게 웃음 흘린다. 모르는 척 들썩이며 자세를 고치는 장난은 너무 짓궂었을까.)
운명처럼? 만약 내가 그대로 팩스로 남아있었어도 너와 언젠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제 몸에 닿는 손과 단단한 허벅지에 놀라 허리를 들어올렸다가 긴장을 풀면 당신에게 제 아랫도리를 부비적거리는 꼴이 된다.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 천천히 뱉어보는 제 숨소리. 무엇보다 저를 잠식한 당신의 향이 모두 자극이 되어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뱉는다.)
운명을 믿진 않아요. 단지, 형이나 제가 서로를 알아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수이든. 연인이든. 각자, 최선만 고르다 보면, 이렇게 됐을 거에요.
(당신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면, 그 온도가 제게 전해져 당신의 실재를 알린다. 그게 못내 달가웠다.)
(너의 반응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면 짧게 끝내려 했던 장난이 점점 길어지게 된다. 모르는 척 콧잔등에 두어번 입술을 쪽쪽 내려보기도 하며 끼워진 다리를 바르작거렸다. 그 때마다 턱에 닿는 너의 숨결이 귀엽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너마저 해치려 했으면 어떡해. 너의 이용을 다 하고서.
형, 읏,
(대답하려 입을 열었다가 짧은 신음만 흘린다. 당신이 문지르는 제 끝을 푹 젖은 드로즈가 감싸고 있어 아찔했다. 제가 감히 당신의 허벅지에 제 좆을 껄떡거리게 될까봐. 수치도 모르고 질질 흘리다 당신을 완전히 적시게 될까봐. 도저히 몸에 힘을 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할 수 밖에.)
형을, 믿은 건, 제 선택이니까요. 지금도 그런, 생각 하세요? 절, 버릴 생각, 같은 거.
전혀. 이젠 너가 원해도 놓아주기 힘들 것 같은데.
(꾹꾹 눌린 성음을 감상하며 빙그레 미소짓는다. 아, 이런 악취미가 생기면 안되는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허벅다리가 딱딱하게 불거진 살덩이를 눌러대고 있었다. 게다가 이불 속의 좁은 공간이 점점 뜨겁고 눅눅해지는 것을 느끼면, 네 것이 애액을 흘려대고 있을거란건 자연히 알게 되니까. 그래도 적당히,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무릎으로 뭉근히 꾹꾹 눌러대며 속삭였다.)
많이 힘들어? 이제 그만 할까?
(고개를 마구 도리질치며,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잔뜩 쾌감에 점철된 자신의 얼굴을 보이기가 부끄러워 당신의 품에 아예 얼굴을 묻어버린다. 이미 제 허리와 골반은 벽에 닿아 더 도망갈 곳도 없었고, 이전의 입맞춤으로 인해 눈을 떠버린 흥분은 가라앉을 겨를도 없었다. 외려 느릿한 움직임에 더욱 애가 타 당신을 올려다본다. 정말, 저를 놓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령 제가.)
하아, 흑, 더어, 더 해달,라고 해도, 요?
더 해줘?
(작은 속삭임에 이어 네 허리를 두른 팔에 힘이 들어간다. 바짝 당겨 안고 몸을 더 빈틈 없이 붙여 누르면 바지 아래 모양 잡힌 제 것 또한 네게 꾸욱 눌려 그 존재를 알린다. 눈을 감고 하아, 낮게 한숨 쉰다. 참는다고 참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꾹꾹 허리를 움직이며 서로의 욕망이 눌릴 때마다 찌르르 하게 쾌감이 허리를 타고 흐른다. 네 머리 위로 쪽쪽 입술을 내리며 연신 이름을 속삭인다.)
설아, 아... 좋아.
으읏, 아,
(잠시만, 말릴 새도 없이 당신이 저를 끌어올리면 당신의 것에 제것을 문지른 꼴이 되는데. 그토록 원했던 강한 자극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높은 신음을 흘리곤 입술을 씹는다. 옷 스치는 소리만 나는데도 왈칵 쏟아져 나와 축축한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아주,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당신으로 수음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제 이름이 불렸으니 대답은 해야했다. 입만 열면 톡 튀어나오는 신음 때문에 가능할 지는 모르지만.)
혀엉, 아, 으흑, 너무, 좋아,
(몸은 솔직해서, 역시나 발음이 신음에 뭉개졌다. 꼭 맞물려 당신의 허벅지를 감싼 제 허벅지를 조이면 당신의 바지에 그 젖은 자국이 묻었다.)
(힘이 들어간 네 허벅지에 성기가 꽉 끼이면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로 날선 쾌감이 들어찬다.)
하윽.., 아, 좋아. 흐으,
(순진하고 착한 아이이기만 했던 너가 제 품에 안겨 이렇게 야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는게 거짓말 같았다. 숨이 가빠진 탓에 머리가 붕 뜬 것처럼 어지러워서 네게 이마를 툭 기대고 조금 더 크게 허릿짓 이어간다. 침대가 들썩이는 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울린다. 처음엔 너와의 키스만으로도 벅차다고 느꼈었는데. 점점 욕심이 불어나 이렇게 얇은 바지 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성기를 부비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마저 아직 부족하다는 갈증이 들어서, 어느새 허리를 두른 손이 골반으로 내려오더니 축축히 첮은 안쪽 다리와 사타구니 부근을 배회한다.)
설아, 만져도 돼?
(홀로 했던 건조한 자위와도, 당신과 했던 키스와도 다른 욕망에 그는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이미 자제력을 잃었는지, 당신의 둔부를 쥔 채 스스로 비비고 있었다. 덥고, 갈증이 났다. 흐응, 새어나가는 신음 사이로 당신의 질문이 비집고 들어온다. 대체 뭐를, 이해하기도 전에 착한 아이처럼 제 바지를 끌어내리곤 다리를 벌린다. 미끌거리는 허벅지가 흥분과 기대감에 잘게 떨린다.)
원...하는, 대로...해주, 읏, 세요.
(아무래도 더웠는지, 이불을 걷어내면, 잔뜩 말려올라가 드러난 상체. 붉게 달아오른 허리와 끈적하게 이어진 제 것이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고, 검은 반바지에 뒤엉킨 채로 다리를 벌리고 있자니, 엉덩이며 허벅지 살이 도드라졌다. 이 모든 게 당신의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니, 정말 꿈같았다. 아주, 외설적인 그런 꿈.)
(그 한 마디 물음에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는 네 급한 몸짓에 이성적인 사고가 또 한번 얼어붙는다. 검은 천에 걸쳐져 부드럽게 죄인 허벅지의 새하얀 살결하며, 부드러운 배 위로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갈빗대가 모두 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무방비한 너를 제 앞에 두고 홀린듯 훑고 있노라면, 마치 앳된 사랑의 신이 저를 유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리도 아름다운 너가 추악한 저를 사랑하는데, 저는 감히 칼과 등불을 들고 네 마음을 갖고 놀았었겠다. 그것을 메우기 위한 마음으로 터질 것 같이 부푼 제 것은 외면하고 너의 쾌락을 무엇보다 우선하기로 한다. 허벅지에 걸친 검은 바지를 발목까지 내려두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 제 몸을 위치한다. 빨갛게 익어 배 위에서 꺼떡거리며 저를 기다리는 성기를 손에 쥐어본다. 뜨거워. 만지지도 않았는데 금방이라도 갈 것 같이 딱딱하게 세운 네가 한없이 귀여웠다. 선단을 살며시 그러쥐고 그간 너가 질질 흘린 쿠퍼액을 윤활제 삼아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이자 방 안에 찌걱이는 젖은 소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 동안 상체를 숙여 네 입술 위로 가벼이 쪽, 그 다음은 목덜미, 그리고 쇄골로. 흥분감에 차마 삼키지 못한 뜨거운 숨결을 그 위로 흩뿌리기도 하며 입맞춰 내려갔다.)
흐으.
(당신이 가만 저를 내려보면 찬 공기가 자기를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어 가만가만 숨을 고른다. 당신이 제 것을 쥐면 당신의 손과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소리를 삼키기 위해 제 마디를 문다. 본능적으로 당신이 움직이기 쉽도록 허리를 낮추곤 무릎을 활짝 벌렸다. 능숙치 못해 삼켜내지 못한 앳된 신음과 함께 왈칵 쏟아낸 프리컴이 당신을 흠뻑 적신다. 다른 액체라 하기엔 손에 들러붙으며 투명하게 늘어지는 꼴이라 부정조차 할 수 없었다.)
형, 하윽, 저. 갈 것, 같은 데. 그만, 아, 그마안..
(이미 지나치게 자극을 받아 발딱 세우고 있던 터라, 생리적 눈물을 매단채 애걸한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손을 쥐면 반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난다. 당신을 붙잡고 나서도 사정을 참아내기 힘든지 한참을 발끝을 세우고 허리를 떨었다. 당신의 손이 닿아있는 것 자체가 지나친 전희가 되어서. 당신의 입술이 닿은 곳이 등불 기름이 떨어져 화상을 입은 듯 뜨거웠다. 야살스러운 소리를 흘리며 몸을 비틀면 상의가 들쳐져 뱀의 꼬리가 살랑인다. 신의 사랑을 받던 프시케, 당신의 침대에서 흐드러진 이 아이는 정말 괴물일지도 모른다.)
(귀두 끝을 톡톡 두드리던 엄지에 끈적이는 액이 끊임없이 느껴지는게 즐거웠다. 그걸 꾹 누를 때마다 얇게 흩어지는 너의 외마디 신음도. 애처롭게 애원해봤자 너가 정말로 멈추길 원할거라 생각하진 않기에 더는 딱딱해질 수 없는 기둥을 더욱 세차게 문질렀다. 내 손에 너가 허연 것을 터뜨리며 쾌감에 벌벌 떠는 모습이 보고싶어.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을 꾹꾹 담으며 느른한 신음을 너와 함께 흘려보낸다.)
으응, 설아... 설아. 가도 돼. 천천히 할게.
(눈가에 맺힌 이슬을 보자 전에 너를 울렸을 때와는 다르게 애틋한 전율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것을 입술로 건조하게 훔치고 그대로 아래로 향해 목덜미의 여린 살을 잔뜩 빨아올린다. 쪽쪽, 붉은 흔적 두어개를 만든 뒤에는 다시 또 아래로. 배에서부터 쓸어올린 손은 후드를 쭉 밀어올려 너의 판판한 가슴팍을 드러나게 했고. 그렇게 도드라진 살덩이로 입술을 서서히 내리던 도중, 일순간 제 모든 움직임을 멎게 한 그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슴 한가운데에 또아리를 틀은 커다란 뱀의 형상이었다. 쉿쉿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울린다. 한 때 저 그림을 새긴 이들을 모두 망에 던져넣는 것이 저의 목표였는데. 지난 과오가 머리를 스쳐지나가면 금빛으로 빛나던 눈에 옅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러나, 너의 용기와 의지를 상징하는 그 생명체가 미치도록 아름답다는 생각은 죄책감을 선명하게 뚫고 올라온다. 그 감상은 저가 이 자리에 너와 함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거쳐왔는지 까지도 증명했다. 검은 비늘을 손 끝으로 찬찬히 쓰다듬어본다.)
여기에 있었구나...
흐으, 펠, 흐, 혀엉, 흑,
(저를 희롱하는 것이 당신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는 안 그래도 부연 풍경을 완전히 흐리게 했고, 제가 매달릴 수 있는 건 당신의 대답 뿐이었기에. 마치 신음처럼 끊임없이 당신을 불렀다. 당신의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교음을 뱉으며 허리와 등을 펄떡거린다. 당신의 손을 타고 뜨거운 탁액이 흘러내린다. 그것이 당신과 제 반지 안 쪽까지 진득하게 스며드는 것 같아서 당신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자면 당신이 제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뱀이 부풀었다 수축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도, 허락해주세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면 정말 뱀의 소리처럼 들렸다. 마른 입술을 스스로 핥짝거리니 더욱이. 지금, 당신의 앞에서, 당신의 손에 의해 엉망이 되어진 제가 있는데. 눈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당신이 무얼 보고 놀랐는지 몰라도, 당신의 목소리가, 시선이, 다른 것에 당신을 뺏긴 것 같아서 싫었다. 당신이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이 당신 말대로 저와 관련이 있다면, 허락해줄 것 같았다. 질시와 갈증에 엉망이 된 마음으로, 맨정신에 못할 말을 해본다.)
형을, 맛보게 해주세요. 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손을 묶어버리듯 그 위로 뜨거운 것이 쏟아진다. 온 몸이 튀어오르며 흐느끼는 너의 모습은 꿈에서도 상상 못 할 자극적인 그림인 탓이라,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바지 아래 눌린 성기가 전율을 느끼며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분명 금방 사정했음에도 여전히 딱딱한 네 것을 두어번 더 위아래로 훑다가 스르륵 때어내어 제 입가로 가져간다. 진하고 향긋한 냄새가 머리를 깊게 침투한다. 그걸 맛보고 싶다는 충동 하나만으로 혀를 내어 묽은 액을 조금 핥아보면, 이로서 너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든 것 같아 묘한 쾌감이 인다. 그러다 목을 긁는 목소리가 들려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너를 눈에 담았고, 어딘가 묘하게 안광이 비치는 네 모습에서 낯선 기운을 읽는다. 내가 너를 붙잡고 쾌락의 문턱을 넘어선 탓에 정말로 너가 뱀으로 둔갑하기라도 한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하와에게 빨간 사과를 내밀어 더러운 욕망을 일깨운 저야말로 어쩌면 뼛속까지 뱀이 아니었을까.)
...그럼 나도, 기분 좋게 해줄래?
(맛보게 해달라는 너의 애원은 여전히 제 귀엔 순수하게 들린 탓에 네 손을 끌어와 도드라진 제 앞섬으로 가져다대준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여 한숨을 떨군다. 형이나 되어서 이렇게 옷을 적시고 있는 꼴도 새삼 부끄러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켜 제 상의를 벗는다. 허물을 벗고나면 당신이 남긴 흔적이며, 흥분에 세운 유두며, 홍조로 인해 붉게 물든 뱀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당신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비며, 제게 쥐어진 당신을 마음껏 누리고자 한다. 제 탁액으로 엉망이 된 손이 미끄러지듯 당신의 옷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손바닥으로 당신의 귀두를 문지르면 그 느낌에 단 숨이 새어나왔다.)
괜찮아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렇죠?
(당신의 목덜미를 빨아 흔적을 남기곤 살살 핥으며 중얼거린다. 느릿하게 손장난을 치다가 당신의 것이 밖으로 나올 만큼 옷이 흐트러지면, 그는 서서히 고개를 낮추어 당신을 한 입 머금는다. 에로스도 화살에 맞고 나서야 어른이 되었고, 하와도 선악과를 맛보고서야 욕정을 알았는데. 그렇다면 저도 당신을 입에 담아봐야할 것 아닌가. 잔뜩 고인 침 때문에 가볍게 혀를 굴리는 것인데도 쫍쫍 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탐하는 제가 당신을 핥는 느낌은 아이스크림 하드를 핥는 것과 비슷했다. 아래에서 위로 크게 핥으면 그의 피어싱이 작게 드드득거리며 당신의 핏줄을 긁었고, 귀두를 물은 채 오물거리면 요도구를 그것이 메꾸었다가 사라졌다.)
형, 엄청, 달아요.
(당신의 것을 제 입술에 문지르며 숨을 고른다. 나오는 액을 모조리 삼키느라 목 안까지 끈적거렸다. 그제야 제 갈증이 충족되는 것 같아 구각을 휘어보인다. 준비를 마친 목울대가 꼴깍, 하고 움직인다. 이젠 당신을 삼킬 차례였다.)
(다 자란 날개를 펼친 반신의 모습처럼 하얀 나신을 드러낸 네 앞에서 저는 경외심, 그리고 무력해짐을 느낀다. 그야 너를 향한 욕정이 이제는 숨길 수도 없이 네 손에 단단히 잡혀 있었으니까. 나의 몸은 이제 온전히 네게 맡긴 채. 무의식적으로 너를 피하려는 상체가 뒤로 기울어지면 기세는 뒤바뀌어 너가 제 위로 올라온 구도가 된다. 어설픈 손장난에도 저는 푹 숙인 머리칼을 움찔움찔 떨며 네가 선물하는 쾌감을 하나하나 음미한다. 그러다 너의 고개가 아래로 향하면 설마 하며 숨을 참는다.)
아아..! 흑, 으, 설아 잠깐만...
(허리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퍼드득 떨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다급하게 네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엮었다. 마치 뜨거운 액체가 아래에 엎질러진 것만 같아. 잔뜩 부풀은 제 것을 핥고 빠는 느낌을 외면하고 싶어도 더욱 커지기만 하는 야한 소음은 계속해서 귓전을 때렸고, 너는 한치도 물러남 없이 저의 반응을 세세히 살피고 있었다. 강아지 같이 말간 눈을 마주보고 있노라면, 꼭 네게 못 할 짓을 시키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혀 한가운데를 가른 딱딱한 이물이 성기를 날카롭게 훑고 지나가면 이성 따위는 쾌감에 녹아 사라지고 배덕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네 혀에 그런게 박혀있다는걸 잊고 있었는데. 그것이 제 것을 긁고 누를 때마다 놀라서 흐느끼는 들숨이 뚝뚝 끊어진다. 귀두에 눌린 목울대가 꿀렁이며 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게 느껴졌다. 머리 끝까지 차오른 쾌감은 곧 터질 준비가 되었으나...)
하읏, 안돼. 설아, 빼 줘.
(이러다가 네 입에다 싸버릴 것 같아서. 일말의 이성이 그것만은 아직 허용할 수 없다며 고개를 들었다. 절정의 끝까지 몰려 저릿저릿한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와중에도 저는 네 어깨를 살살 밀어낸다.)
(당신을 입 안 가득 채우고, 살살 굴리면,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 듯 달콤한 것들이 계속 나왔다. 중독될 것 같았다. 호흡을 앗아가는 당신의 향부터 목구멍을 적시는 맛까지. 그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등불을 금지한 이유는, 이토록 엉망이 되어 우는 그를 세상조차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선악과를 금지한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아름다움과 외설스러움을 오직 혼자만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제 머리칼을 잡는 당신의 손가락은 제가 잘하고 있다는 칭찬의 쓰다듬 같았다. 먹이를 삼키는 뱀처럼, 천천히 목구멍을 열어 더욱 깊숙하게 넣으면, 꿀럭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축축한 점막이 당신을 바싹 조였다가 느슨하게 풀어진다. 그러다 힘겨우면 살짝 뱉었다가, 다시 입에 삼키는 것이, 서투르지만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허리를 떨면, 이를 도와주는 것이 되어 더욱 좋았다.)
우읍.
(싫다는 듯 파묻은 고개를 저으면 당신의 것이 입안에 잔뜩 휘저어진다. 당신의 허벅지를 팔로 꼭 안고는 물고 있는 것을 놓지 않는 것이, 영락없이 장난감을 뺏길까 걱정하는 강아지였다. 당신을 입에 얼마나 넣었는지 보여주려고, 제 어깨를 쥔 당신의 손을 제 타액과 당신의 액이 고인 당신의 선단에 가져다 댄 상태로 주욱 제 입술까지 미끄러트린다.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어찌 고개를 물리겠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당신의 이성, 죄책감과 후회 모두 녹여 삼켜내고 싶었다.)
아앗, 윽, 흐으, 안돼...
(뜨겁고 축축한 점막이 성기를 감싸고 조여들자 고개를 뒤로 젖혀 숨을 헐떡인다. 붉은 반점이 군데군데 피어난 목울대가 침을 꼴깍꼴깍 삼킬 때마다 위아래로 울렁인다. 거기다 제것을 문 채로 네가 목소리를 내면 그 진동마저 자극으로 다가온다. 머리는 점점 비어가고 눈 앞이 흐려졌다. 손이 이끌려 질척한 선단과 그 위를 물은 입술을 만지고 나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담아내고 있는지가 그제서야 실감이 나서, 물기를 머금은 눈꼬리가 잘게 떨린다. 아아, 머리칼을 휘어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너를 뒤로 밀어내는 대신, 제게로 당겨왔고, 곧이어 뒤로 짧게 물렸다 당기기를 반복한다. 얼른 끝내야지 너가 덜 힘들거란 생각에. 아니, 그런 핑계를 대며 허리를 들어 쿡쿡 네 목젖을 쳐올린다. 네 코가 아랫배에 닿을 때마다 묘하게 짜릿한 기분이 일었다. 푹 숙여진 고개 위로 곱슬거리는 앞머리가 리듬을 타며 흔들렸고, 그 아래론 꽉 다물린 제 입술이 드러났다.)
읏, 큭... 하, 설, 설아. 아..!
(그렇게 두어번 더 쑤셔박았을까, 급하게 뒷머리를 잡아당겨 입에 물린 성기를 빼낸다. 그러면 울컥울컥 사정액이 위로 튀어올라 제 배와 다리에 흘러내린다. 흐느끼는 듯한 가쁜 숨소리는 한참동안 잦아들지 못했고, 몸을 지탱한 팔이 무너질듯 후들거렸으나 와중에 네 안위가 더욱 걱정되어 떨리는 손으로 엉망이 된 입가를 닦아준다.)
하아.., 흐., 괜찮, 흐, 괜찮아?
(잔뜩 붉어진 눈가가 당신의 것에 고정된다. 사실 붉게 달아오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당신에게 머리채를 잡혔음에도 결과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당신과 당신의 사정을 관찰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저것까지 내 입에 삼켰어야 하는데, 하는 독점욕이 자꾸만 들어서. 번들거리는 입가를 혀로 훑는다.)
형, 화이트 초콜릿같아요.
(맛도 분명 그럴 거다. 농도도 무척 진할테고, 당신의 맛이 흠뻑 나겠지. 허락되지 못한 간식이란, 더욱 원하게 만드는 마력이라도 있는 건지. 저도 모르게 그것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 제 입 안에 넣고 굴려보면, 찐득하게 제 혀에 달라붙는다. 다음에는 전부 삼켜버려야지, 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며, 겉으론 손을 뻗는 당신에게 고갤 끄덕이며 몸을 숙인다.)
혼내실 거에요? 기다려야하는데, 말을 잘 안 들어서.
(그러지 마세요, 라고 몸으로 말하듯 당신 곁에 누워 힘이 빠진 당신을 품에 넣고 이곳저곳을 어루만진다. 그렇게 배가 닿으면 철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신 옷 새로 들어간 왼 손이 허리를 따라 애교처럼 지분거리길 멈추지 않았고, 허벅지를 다리 사이에 넣어 당신을 붙잡았다.)
아아, 그걸...
(입으로 사라지는 멀건 액을 당황 어린 눈으로 지켜보자 순간 배에 올라붙은 성기가 다시 한번 꺼떡 움직여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제 곁에 누워 몸을 비비고 쓰다듬는 네가, 귀여운 모습을 믿고 멋대로 구는 것이 꼭 정말 강아지 같다는 생각에 손을 올려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어준다. 사정의 여운으로 온 몸이 여즉 예민한 탓에 지분거리는 네 손길 하나하나에 잘게 몸을 떨기도 하며. 갈라진 목소리가 숨결과 섞여 낮게 네 목께로 파묻힌다.)
어떻게, 혼을 내겠어... 하, 잘 했어. 그래도... 다음엔 더 말 잘 들어. 응?
(장난스런 웃음을 흐흐 흘리며 너를 꼬옥 당겨안는다. 두 허벅다리가 다시 교차하듯 맞물려 한치의 공간 없이 맞닿이면 그 사이에 끼인 끈적한 두 비부가 꾸욱 눌린다.)
그러기엔, 형이 너무 달아요.
(당신의 복슬한 머리에 고개를 내려 쪽소리를 낸다. 손을 움직이면 잘게 반응해주는 당신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야스럽고 그렇지. 저를 이토록 예뻐해주는 것도, 사랑해주는 것도 당신이 유일할테다. 그러니 더욱 놓치기 싫었다. 당신의 쓰다듬을 받고 있노라면, 역시 이전의 제 머리를 잡은 것 또한 칭찬인 것 같아서, 더욱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를 올린다.)
형의 사랑이 가장 달콤한 맛이 나는 걸요. 계속 맛보고, 오래 품에 넣고 싶어요.
(꾸욱 눌린 제 것이 참지 못해 투명한 액을 끈적해진 탁액 위로 흘린다. 저는 이토록 제가 적실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보여주기가 이제 와 쑥스러워 당신의 눈이며, 이마며 자잘하게 입을 맞춘다.)
(너어, 하고 볼멘소리를 내던 것은 결국 웃음소리로 바뀌고 만다. 저가 뭐라하든 좋다며 몸을 부비는 네게 꼬리라도 달렸더라면 분명 세차게 흔들리고 있겠지. 밀착된 아랫배 사이로 희멀건 액이 둘 사이를 너저분하게 이어주는걸 흘끔 내려다보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볼을 감싼다. 지금 너와 내가 이렇게 하나가 됐어. 그 현실감 없는 사실을 다시끔 실감하기 위해 지금의 네 얼굴을 고스란히 눈에 담아본다. 땀에 젖은 이마며, 붉은 홍조빛 도는 볼과 검은 밤을 닮아 저만을 바라봐주는 두 눈까지. 모든게 꿈 같다는 생각이 선뜩하게 들면 또 다시 제 마음에 별똥별이 일고, 그 모든 걸 네게 바치리라는 결심이 든다.)
사랑해.
(둘 만이 들리도록, 바람이 귀를 스치듯 작은 목소리로 그리 속삭였다.)
저도, 너무너무 사랑해요.
(쏟아내던 입맞춤을 잠시 멈추게 된다. 당신의 고백엔 늘 경이를 느끼게 된다. 제가 기계 조작이 아닌 다른 낭만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런 건조한 고백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텐데.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심장이라도 꺼낼 수 있었다. 아쉬움에 당신의 입술을 짧게 머금어 본다.)
씻으러 갈까요. 찝찝하겠어요.
으응... 그래야지. 하,
(노곤노곤해지려던 참에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너와의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자위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한참 전의 일이라.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너저분한 결과를 불러온 적은 없었는걸. 어정쩡하게 침대에 걸터 앉아 곁에 놓은 휴지곽에서 휴지를 두어개 툭툭 뽑아 너와 나의 아랫배에 묻은 것들을 간단하게 훔쳐낸다.)
먼저 씻을래? 화장실 좁아서 불편할까봐.
으응. 고마워요.
(당신이 제 배를 휴지로 훔쳐내면, 그 간지러움과 미끌거림에 침음을 흘린다. 당신의 배려는 감사하면서도, 저를 지나친 어린 아이로 만들어,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 저를 어른스럽다거나 멋지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기보단, 아껴주는 걸 알아서, 오래도록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일 거다. 당신은 생각보다 여린 것에 약한,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오로지 당신만은 몰랐으면 좋겠다. 기지개를 펴 듯 정리된 마음과 함께 몸을 움직여보곤 당신의 곁에 앉아 팔을 안는다.)
그냥, 괜찮으면 우리 같이 씻어요. 각자 하는 것보단 빠를테고. 아직 형이랑 있고 싶기도 하니까...
흐흐, 그럴까?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네가 마냥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건 거절할 수 없지. 너와 함께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부스 안으로 너를 먼저 넣어주고 들어가 문을 닫으면 좁은 여유 공간 탓에 자연스레 네 품에 등을 대고 안긴 자세가 된다. 물을 틀어 얼마 맞추지 않아도 딱 알맞은 온도의 온수가 둘 사이를 적시는 동안 샤워볼에 거품을 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경을 벗지 말 걸 그랬어요.
(당신의 손에 이끌려 부스 안 쪽에 들어가면 곧바로 나신이 된 당신이 뒤따라 들어온다.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절로 들었다. 당신이 거품을 만드는 동안 저는 샤워기를 빼내 제 머리와 배에 묻은 것들을 대강 씻어내리고 당신의 머리를 조심히 적셔준다. 꼭 껴안은 채 흐르는 물에 당신의 상체를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문질러 흔적을 지워준다. 찰박이는 소리를 울리며 젖은 몸을 부딪치는 감각은, 침대 위와 달리 생소하고 노골적인 느낌이었다. 뽀얀 김에 적당히 우리가 가려지는 덕분에 당신을 꾸욱 누르고 있는 제 것도 숨겨진다. 느낌이야 다 나겠지만은, 그래도. 적절히 따듯한 물이 좋았는지 녹진하게 당신의 어깨 위로 녹아내린다. 답지 않게 진짜 좋다며 혼잣말도 흘리며.)
부끄럽게. 근데 안경 벗으면 얼마나 안 보여? 지금 내 얼굴은?
(품 안에서 뒤돌은 몸을 다시 돌리면 너를 마주보고 선 자세가 된다. 물 아래 두 몸이 김을 내며 맞닿인다. 곱슬거리던 머리칼은 물에 젖어 얼굴에 단정히 내려앉아 평소와 사뭇 달라보이기도 할테다. 그렇게 한 뼘 거리에서 널 올려다보며 네 눈가에 붙은 머리를 곁으로 살살 치워준다. 거품이 가득한 샤워볼을 어깨와 가슴팍, 아랫배에 살살 문지르기 시작하고.)
조금만 멀어져도 흐릿한 느낌이 있지만...그래도, 이 정도 거리에선 보여요. 예쁘네요.
(당신이 그대로 몸을 돌리면 배를 만지작 거리던 손이 허리를 두르게 된다. 그대로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유난히 붉고 촉촉한 것은 물기 때문인가. 꽃물 들 듯 붉은 뺨이 예뻐 깨끗해진 손으로 당신의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준다. 당신의 맨 이마를 보는 것은 아마 처음이지 싶어, 제 이마를 톡 기대본다.)
느낌이 이상해요.
(최대한 참다가 결국은 미소를 띄며 꼭 껴안으면 제게 묻은 거품이 당신에게 옮겨간다. 당신의 손을 꼭 잡은 채. 숨을 크게 들이쉰 듯, 배에 힘이 들어간다.)
아래는, 제가 할게요.
(머리가 모두 뒤로 넘겨져 이마가 훤히 드러나면 평소보다 조금은 예리해보이는 인상이 된다. 제게 기대는 이들을 위해서 다가오는 기회와 성공을 모두 알아보고 낚아채야 했음에도 눈 앞을 가리고 다닌 이유는, 저를 향해 으레 욕심으로 번들거리던 무수한 눈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네 앞에선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이마가 닿으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손길이 제지당하면 작게 웃는다.)
조금, 그런가? 너무 애 취급 같아?
(아니면, 다시 설 것 같아서? 이어 속삭이고 판판하게 힘이 들어간 치골 부위를 손으로 슥 문지르는 동안 휘어진 눈이 네 반응을 살핀다.)
(당신의 웃음 때문일까, 혹은 노골적인 질문 때문에, 또는 잔뜩 불거져 더이상 숨기기 어려운 제 욕정 때문이라도, 손에서 힘을 빼곤 당신의 허리를 꼬옥 안는다. 당신에게 제 성감을 모두 쥐어준 이후로, 이 좁은 곳에서 매달릴 곳은 당신 뿐일테니까.)
하아, 읏.
(꼭 다문 잇새로 숨을 뱉다 장난으로라도 당신의 몸이 제 끝에 스치는 순간마다 몸을 움찔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울리며 제게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밝은 조명 아래 당신이 거품 가득한 손으로 치는 장난을 목격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젠 가림막도 없이 제게 온전히 비추는 당신의 솔직한 짖궂음이 지나치게 야했다. 더군다나, 이미 사정 이후 아니던가. 당신이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물과 전혀 다른 농도의 액이 울컥거리며 바닥으로 흘렀다. 억울해, 제 고개를 파묻었던 당신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앙, 물었다 놓는다.)
혼, 안 낼, 거라고, 했으면서.
혼 안 냈잖아. 칭찬해주고 있는데.
(모르는 척, 여전히 웃음기를 섞어 네 귓가에 속삭인다. 여린 피부에 딱딱한 치열이 눌리자 흠칫 어깨를 움츠렸고. 이제는 물기도 해? 웅얼이며 너를 보다가 무언가가 투둑, 발치로 떨어지자 시선은 그 곳으로 향한다. 다시 발딱 서서 요도구 위로 투명한 액이 흘러 넘치는 그 모습이 애처롭고도 귀여워서. 그리고 네 목소리가 이 비좁은 공간을 잔뜩 울리는게 좋아서 거품이 잔뜩 묻어 미끌거리는 손으로 그곳을 살며시 그러쥘 수 밖에 없었다.)
여기 더러워졌어. 씻겨줄게.
(찌걱, 찌걱. 아주 느릿하게 살기둥이 좁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그럴 때마다 붉게 달은 귀두가 눈 앞에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치, 마한. 하, 아윽, 너무, 하으, 예민해서,어,
(칭찬이라기엔, 너무 괴로웠다. 허리에 두른 손이 마치 묶인 것 마냥 풀 수가 없었다. 당신을 놓아버리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움직이는 당신의 손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샤워기에서 나는 물소리 사이로 찔꺽이는 소리, 제 신음소리, 선액이 줄줄 떨어지는 소리가 뒤섞인 자극이 이미 한계였다. 당신의 손이 닦아내기엔 너무 많은 양이 흘러내려 거품이 닦일 정도였다. 어찌나 쾌감이 컸는지 손이 구멍이라도 되는 양 어설픈 허릿짓을 하며 제 것을 껄떡거리면 제멋대로 당신의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키스, 으응, 해,주세요.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면 저도 모르게 조르는 듯한 목소리가 나온다. 물 온도 때문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붉게 젖은 뺨이었다. 더 많이 당신에게 내맡기고 싶은 마음일까. 아, 가고 싶은데, 느릿한 손놀림이 위 아래를 훑을 때마다 교성이 터졌다. 빠듯하게 차오른 사정감을 당신이 툭 밀어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찌걱이며 젖은 피부가 비벼지는 소리보다 너의 신음소리가 더 크게 욕실을 울리기 시작할 즈음, 제 것도 네 것만큼 조용히 부풀게 되어 사타구니에 툭툭 닿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것을 외면하고는 우선 네 몸에 온전히 집중한다. 물이 덥다. 아니면 안은 네 몸이 더워서? 어느새 두 얼굴은 뜨거운 욕탕에 담겼던 것 마냥 붉게 달아올라 김을 내고 있었다. 멋대로 허리는 쳐올리면서도 키스 따위는 허락이 있어야 할 수 있기라도 한 건지. 애원하며 매달리는 강아지의 눈을 응시하다가 이끌리듯 고개를 틀고 여린 상순을 머금는다. 빨아들이고 핥아주기를 반복하며 움직이던 아래의 손을 잠시 떨어뜨린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술의 여린 점막을 혀로 희롱하며 너를 가만히 기다렸다.)
(당신이 입술과 혀를 내어주면 그게 꿀이라도 되는 양 쪽쪽거리며 핥기 바쁘다. 당신의 타액과 함께 신음을 삼키는 소리가 울릴 때 즈음, 풀린 눈으로 아래를 보면 당신의 손이 떨어진 제 몸이 겨우 보인다. 당신에게 입술을 부비적거리며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를 굴려본다. 나, 아까는 어떻게 절정까지 이르렀지. 그땐 분명. 아. 당신의 허락이 있었다. 보통, 동영상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명령을 원하던 배우의 대사가 떠오르면 저도 모르게 뒤로 뺀 얼굴이 한 층 더 붉어진다. 그런 말을 당신에게, 맨정신으로 해볼 거라 생각하진 못했는데. 숨을 고르며 머리를 굴리는 게 투명하기도 하다.)
형, 저, 가고 싶어요.
(떨어진 당신의 손을 제 손과 얽어보면 거품이라기엔 지나치게 끈적한 것이, 제가 얼마나 느꼈는지 체감된다. 눈을 꾹 감으며 그런 말을 뱉으면서도, 당신에게 하체를 꼭 붙힌 것만으로 넘친 액이 당신의 것과 제 것을 투명하게 잇는다. 그 풍경이 주는 쾌감이란, 수치심과 기대감으로 움직이는 목울대를 숨기지 못한다.)
(눈을 도록도록 굴려가며 고민하던 네게서 끝내 들려온 말은 생각보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입매를 얇게 당기고 촉촉하게 홍조 띤 볼에 입술을 내리게 된다.)
착하다.
(짤막한 칭찬을 끝으로 멈췄던 손이 다시 빠르게 율동한다. 끝까지 내몰린 너의 사정감은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정말로 툭 밀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는 손에 다 잡히지 못할 정도로 부풀은 기둥을 두어번 훑자 그것이 제 손 안에서 크게 튕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네게 입을 맞췄고, 그렇게 제 안쪽 손목에 뜨거운 액이 뿌려지는 동안 잇새의 신음과 숨결을 모두 먹어치웠다.)
(당신이 칭찬하며 웃으면 그것만으로도 긴장감에 제 허벅지가 바르르 떨리는 게, 이미 제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다. 저는 그 감각이 마음에 드는데, 당신도 과연 저를 길들이길 원할까. 아주 놀랍게도, 혹은 전혀 신기하지 않게도 제 몸은 오직 당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데.)
하 읍, 흣, 응,
(제가 내뱉는 숨, 말, 신음을 전부 삼키고자 다가온 당신이 제 것을 세게 쥐면, 제법 참은 만큼이나 격렬한 흥분이 허옇게 튀었다. 당신의 손목이며 배, 어쩌면 제 명치까지. 끈적하게 늘어붙은 제 흔적이 당신을 타고 흐른다. 그 모습이 조명 아래 지나치게 적나라하여, 저를 부끄럽게 하면서도, 마치 영역표시라도 된 양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잔열감에 몸을 떨고 여전히 잡힌 성기를 껄떡거리면서도 물은 당신의 상순을 놓치기 싫어서, 가쁜 숨으로 혓바닥을 놀린다.)
(쾌락에 절은 너의 음성이 귓가에 울릴 때마다 몸이 오싹오싹 떨렸다. 아까보단 묽지만 적지 않은 양의 정액이 그 특유의 향을 내며 샤워실의 김과 섞였고, 그걸 깊이 들이마시면 머릿속이 더욱 탁해져간다. 쪽, 쪽. 손을 멈추고 네가 여운에 집중할 수 있게끔 연신 입술을 물고 빨다가, 서서히 살기둥을 미끄러뜨려 손에서 놓아준다. 힘이 풀린 너가 제게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허리를 꼬옥 감싸안아 벽에 몸을 살짝 기대었다.)
...괜찮아? 나 이래서 너랑 같이 안 씻으려 한 건데.
(옅게 웃음 핀 얼굴이 고개를 숙인다. 자꾸만 네게 짓궂은 장난만 치게 되는 것 같아서.)
괜찮,아요.
(당신의 품에 기대어 마음껏 볼을 비비면 발음이 뭉개진다. 물로 인해 적당히 따듯하고 말랑한 당신의 촉감이 좋았는지 허리를 마주 껴안으면서. 이어진 말에 슬며시 고개를 떼어내 당신을 물끄럼 본다.)
전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도, 좋아서요.
(너무 좋아해서,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를 뿐이다. 당신의 볼에, 턱 끝에, 입술에, 제 입을 꾹 눌렀다가 떼면 유난히 보드랍고 습윤한 소리가 울린다. 붙어있는 만큼이나 당신의 것도 느껴지기에, 제 몸으로 꾹 눌러본다. 당신도 씻어야할텐데, 그런 생각과 나쁜 생각이 자꾸 들어서.)
(생각도 못했다는 말에 가슴이 콕 찔려서, 조금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을까. 이런 아이에게 제가 무슨 짓을 한 거람. 어질어질해지려던 참에 다시 입술이 닿는다. 꼭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이 보드라운 감촉에 눈을 살풋 감았다가 잊고 있던 제 것이 꾸욱 눌리면 저도 모르게 으응, 하고 작게 콧소리 흘리게 된다.)
...얼른 마저 씻자. 물에 너무 오래 있으면 감기 걸려.
(괜히 재촉하며 묻은 거품을 물로 헹구었다. 너를 먼저 말끔히 씻기고서야 제게로 샤워기를 돌렸고.)
먼저 나가서 말리고 있을래? 난 조금 더 하고 나갈게.
(어느새 몸이 헹궈지고 고개를 끄덕이면, 묘한 재촉에 수건을 들고 아예 문 밖으로 나서게 된다.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완전히 닫힌다. 취기와 질시에 벌인 짓부터 연속적인 색사가 10대에겐 지나친 자극이었을지 모른다. 묘한 탈력감과 노곤함에 그대로 문에 기대 긴 숨을 뱉는다. 고개를 돌리면 허물처럼 뒤엉킨 옷가지들이 보인다. 저걸, 입을 순 없을테니, 만약 잔다면 이 상태로 당신을 품에 넣어야하는 걸까. 이미 이성과 통제를 잃어 생각만으로 조금 부푸는 것 같았다. 당신은 그저 장난이었을지도 모르지. 이런 모습이 당신을 오히려 곤란하게 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몸을 옮기려는데, 문 너머에서 여러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물소리. 그야 샤워 중이니까, 남은 거품을 닦아내는 중일지도 모르지. 숨소리, 씻는 와중에 가빠질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나직한 신음 소리. 아, 너무나도 달콤하고 중독적인 목소리야. 당신이 저 몰래 하고 있는 행위가 상상되면 저도 모르게 붉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게 된다. 고작 벽 하나를 두고 제 뒤에서 그런 걸 하고 있다니, 지금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려나, 혹시 당신 내 생각을 하면서 흔들고 있진 않겠지. 은근히 그런 걸 바라고, 당신의 모든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하는 마음이 비정상적임을 모르지 않았다만, 과연 잘못이라 할 수 있을련지. 안경을 챙긴 그가 한창 몰두하고 있을 당신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간다. 투명한 유리벽에 튄 물기나 습하게 차오른 김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양념처럼 자극을 더할 뿐. 푹 젖어 움직일 때마다 물방울을 떨어트리는 머리, 뽀얗게 드러난 이마 아래 제가 들어온 줄도 모르는 당신의 눈동자나, 소리를 참느라 꼭 깨문 붉은 입술까지. 그 뿐일까. 제가 남긴 잇자국과 순흔이 적나라한 목덜미가 잘게 떨리고, 그와 이어진 팔이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안다면, 마땅히 가장 절정인 신체에 시선이 고인다. 당신 스스로의 것을 우리의 반지가 끼워진 손으로 훑으면 떨리는 몸짓이 얼마나 색정적인지, 감상하는 것이 즐겁다. 제 입을 드나들 때도 당신은 이런 표정을 지었고, 당신의 것은 그런 색을 띠었겠지. 그 맛을 기억하는지라, 거울 속 제가 양뺨을 붉히고 있었다.)
(너를 밖으로 내보내고 샤워부스에 혼자 남고서야 참고 참은 한숨을 뱉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 있다보면 날뛰던 욕망은 천천히 가라앉았으나 아랫배에서 꺼떡이는 성기는 여전히 그 모양을 고수하며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자꾸 눈 앞에 너가 아른거렸다.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을 떨며 제 손 안에서 허리를 절박하게 흔들던 너의 모습이. 그리고 따라서 일그러지던 물기어린 표정이. 말랑할 것이 분명한 허벅다리는 손에 움켜쥐면 분명 그대로 달아오를테지. 울컥, 성기의 끝에서 애액이 흘러 떨어지면 그 목을 콱 움켜쥔다. 너를 떠올리며 욕정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왜 자꾸, 네게 못 할 짓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거울이 달린 벽에 전완을 대고 그 위로 머리를 기댄다. 그리고 다른 손은 살덩이를 움켜쥔 손을 거칠게 흔들었다. 밖에선 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젖은 피부가 요란하게 부딪히고 물이 튀어도 소음은 물 아래 묻힐 것이다. 그 생각까지 마치면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비집고 나온다.)
으, ...응, ...아. 서... 흐,
(설아, 입모양만 벙긋거리며 네 이름을 감히 입에 담는다. 이런 모습을 네게 들키기라도 하면 너는 과연 나를 용서해줄까? 후배의 이름을 부르며 몰래 좆대를 흔드는 이런 못난 선배를. 절정에 치달을 수록 떨리는 몸이 주체되지 않는다. 기어코 급하게 토해낸 정사가 떨리는 두 다리 사이로 후두둑 떨어지면, 허리며 어깨를 들썩이며 간신히 숨을 고른다. 한 층 개운해진 기분으로 팔에서 고개를 땠는데,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시야각 너머로 고개를 돌리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너는 그 곳에 서 있었으니. 온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설아.
(그 절정의 순간까지 모두 눈에 담고서야 뻐근한 만족감이 차오른다. 당신이 흘린 탁한 물감이 비로소 그림을 완성한다. 야릇한 향이 김을 타고 퍼져 코 끝을 스친다. 쾌락의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당신이 벙긋거리던 이름이, 가장 절경이었지. 훔쳐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으니 변명도 도주도 없었다. 제 이름이 불렸으니, 응당 당신의 품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겠나.)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형이 제 생각을 한 거면 좋겠는데...
(당신을 뒤에서 안으면 자연히 고개는 당신의 어깨 위에, 한 손은 당신의 가슴팍에, 그리고 남은 손은 아직 끈적거리는 당신의 것에 닿는다. 두 손으로 당신의 몸을 느릿하게 어루만지면 잔뜩 짠 물감을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중독적인 느낌에 물기를 닦아낸 것이 무색하게 다시 젖어드는 몸을 떼어내기가 싫었다. 푹 젖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살살 졸라본다. 당신이 저를 아끼는 것도, 색정에 사로잡힌 스스로의 모습을 수치스러워하고 제게 숨기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저는 그런 당신을 낱낱이 전부 파헤치고 싶은 욕심에 거울 너머 당신의 표정에 시선이 박히니, 착한 후배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배움이 빠른 후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제가 닦아줄게요.
읏, 하아. 너어...
(잔뜩 찌푸린 눈살을 차마 네게로 돌리지 못한다. 귓바퀴가 홧홧해 네 볼이 스치면 서늘할 정도다. 두 눈을 흘러내린 머리칼 뒤로 숨기며 사정 끝에 한 층 더 예민한 몸을 품 안에서 바르작거린다. 바른대로 네게 말할까. 너가 절정에 이르던 그 순간을, 그 표정을 떠올리면서 함께 더 없을 쾌락을 느꼈다고. 차마 그럴 순 없어 입술을 옴싹이며 고개를 뻣뻣하게 저었다. 몸이 밀려 거울 앞에 더욱 가까워진다.)
언제부터... 너.
(질책하려 해도 저가 한 짓이 있으니 더 무어라 말 할 수 없었다. 너가 이러다가 다시 푹 젖어들까봐 어느정도 몸이 닦이면 물을 껐으나 손은 곧장 떨어지지 않는다. 두배로 예민한 아래를 주무르는 손은 마치 예리한 칼날과도 같아서, 자꾸만 몸을 떨게 되었다.)
아아, 그만. 너무...
아까부터요.
(당신의 성기를 잡고 상냥한 손짓으로 위아래로 문지르면, 제 손가락 사이에서 그 끝이 흔들린다. 그 모습이 아주 잘 익은 과실처럼, 선홍빛이라 침이 고인다. 당신이 멈춰달라고 하면, 말을 잘 듣는 저는 멈춰야지, 마디 사이에 끼운 상태로 꾸욱, 압을 넣으며 움직임을 멈춘다. 거울 속의 제가 혀를 넓게 펼처 당신의 목에서 귀까지 핥아올린다. 은빛이 번뜩이는 것이, 침대에서의 혀놀림을 연상시키는 것 같았다. 귓가에 입을 맞추고 이미 확신에 차 웅얼거리기를,)
정말, 좋아서 물어보는 거에요. 사랑하는 형이 제 생각을 했다니까.
(얼굴을 붉히고, 수치를 아는 것도 자신의 잘못을 알 때나 가능하다. 비정상임을 알아도, 죄라는 것을 몰라서, 있는 그대로 제 감상을 뱉는 그의 낯은, 순수하게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대답을 듣고나서야 놓아주겠다는 듯, 당신의 상체를 받친 손아귀나 당신의 것을 쥔 손에 서서히 힘을 쥐었다 풀었다.)
윽... 으.
(손아귀에 꽈악 쥐이는 순간 짧게 바르르 떨었다. 집요하구나. 그래, 전부터 너는 그랬었지. 처음 만났을 때도 시키는 것 하나부터 열 가지를 충실하게 해온 성격에, 너를 거스른 그 날부터 지금까지 쭉 제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으니. 즈윽, 금볼이 목을 긁고 올라가는 것이 마치 재촉 같아 또 한차례 몸을 떤다. 저 감각은 익숙해지지를 않네. 끙끙거리며 고수하던 묵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너를, 아까 너가 갈 때를 떠올리면서...
(작게 쉰 목소리로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떨군다. 그러다 뚱하게 튀어나온 입술로 너를 돌아보곤 양 엉덩이를 툭 내밀어 네 앞섬을 살짝 밀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이런 때에 써먹기야?
(당신이 떨면서 짓는 그 표정이 좋아, 그리고 제 생각을 하며 수음했다는 것도, 그걸 인정하기까지 제 생각으로 가득 찼다는 것도,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흡족함에 구각을 슬며시 올린다.)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니까요.
(이럴 때가 어떨 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대가 지나치게 좋을 때 쓰는 것 아닌가. 그만큼 제겐 당신의 그 순간을 목격한 것이, 귀중했는걸. 작은 웃음을 흘리며, 당신을 꼬옥 껴안고 체리같이 둥근 입술을 촉, 가볍게 머금는다. 당신의 엉덩이가 제 것을 밀어내면 툭, 밀려났다가 꾹, 누른다. 이러다, 당신 말대로 정말 감기 걸리겠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입술에 쪽 소리를 내고는 느릿하게 몸을 떼어낸다.)
수건, 꺼내드릴게요.
...나도 좋아하고 사랑해.
(떨어진 입술이 웅얼인다. 몸이 물러나기 직전에 엉덩이가 꾸욱 눌렸을 때 작게 숨을 흣 들이마신다. 저가 판 무덤에 제 발이 걸리는 꼴이다. 네 옆에 있으면 행운도 잘 안 드는걸까? 건네주는 수건을 받아들고 네 몸부터 톡톡 훑어준 뒤 스스로를 닦으며 욕실 밖으로 나선다.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해서 기분이 퍽 좋았다.)
내 옷 좀 빌려줄까? 그러고 자면 춥겠는데.
(옷장을 열어 잠시 둘러보다가 검은 드로즈 두 장과 편하게 입던 반팔, 반바지를 두장씩 꺼내어 침대 위에 올려둔다.)
...고마워요.
(아무래도 제 옷을 입고 자는건, 아까도 생각했지만 무리이기에, 군말 없이 당신의 옷을 입는다. 내일 빨아서 돌려드려야겠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반팔에 고개를 들이밀면 여기서도 당신의 향이 훅 올라온다. 그러고보면, 같은 바디워시를 썼으니, 제게도 비슷한 향이 날텐데. 그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맡을 때마다 만족스러웠다.)
피곤해도 머리는 말리고 자요.
(제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툭툭 털던 그는, 어느샌가 드라이기를 찾아와 제 앞의 소파를 톡톡 두들긴다.)
아아, 응.
(어디있는지 말 안해줘도 잘 찾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할랑한 반팔과 바지를 마저 갖춰입고 네가 오라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기계가 위잉 돌아가는 와중에 머리를 어색하게 가누었다. 네게라도 대신 집중하고자 집중해서 머리를 터는 너를 가만히 올려다보았고.)
... 누거 머리 말려주는거, 처음인 것 같아.
(당신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손으로 살살 쓸어가며 말린다. 적당히 따듯한 바람이 제 손과 당신의 머리를 간지럽힌다. 생각해보면 저도 할머니의 손길만 받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어주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잘 말려야, 당신이 감기에 걸리지 않겠지, 보송보송해야 푹 잘 때에 기분이 좋을 거고, 자고 일어나서도 축축한 베개때문에 언짢지 않을테고. 그런 애틋함이 있었구나, 당신을 내려보는 시선에 다정함이 깊어진다.)
저도, 처음인 거 같아요. 덕분에 오늘 처음 해보는 게 많네요.
진짜로? 너는 처음도 다 너무 잘 하네. 뭐든.
(곱슬머리라서 안 아프게 말리기 쉽지 않을텐데. 네게 머리가 당겨지거나 뜯기지 않는게 신기했다. 조심스럽게 살살 골라주는 손에서 그 애정이 느껴져서 따스한 햇살 아래 바람을 맞는 것 같았다. 마치 쓰다듬어주는 것 같기도 해서, 눈을 살풋 감아 반쯤 잠결에 빠지기도 한다. 부모는 없었으나 형제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바랬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너인 것 같아서 베시시 미소짓게 된다.)
...형이 서툰 모습도 예쁘게 봐주셔서 그런 거에요. 머리는...음.
(칭찬이 어색하여, 가만가만 고요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평온을 찾고 꿈나라 초입에서 저를 기다릴 동안, 당신의 머리가 물기 없이 부드럽게 말랐다. 그런 와중에 제 머리도 많이 건조해져, 대강 안쪽까지 바람 한번 쐬어주자 금새 마른다. 드라이기의 전선을 느릿하게 감아본다. 이능 활용을 연습 삼아, 습관처럼.)
할머니가 종종 말려주셔서 익숙해 보였나봐요. 전엔 같이 살았거든요. 나중에 같이 인사 드리러 가요.
(전선이 또아리를 틀듯 스스로 말리는 것이 신기한지 멍하니 구경한다. 기계를 다룬다는 건 전산적 이능이 아닌 물리적 이능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는걸 새삼 깨달으며. 너의 능력이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 궁금해져 그 매듭을 스치듯 어루었다. 그러고보니 너의 피붙이에 대해선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계셨구나. 근처에 사셔?
(전선에 당신의 손이 스치면, 눈을 조금 길게 감았다 뜬다. 그 모습을 당신이 보았을까, 혹은 그때 누군가의 목을 낚아채는 모습은. 당신이 떠올리지 않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목격하지 못했기를 바라며 지레 찔려선, 아무렇지 않은 척 드라이기를 마저 정리했다. 한 편으론 당신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하나, 싶다. 괜히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싶진 않으니.)
음, 지금은 멀리 계셔서... 형을 보면 좋아하실 거에요. 예쁘니까. 말이나, 행동이나.
...아.
(드라이기를 정리하는 네 기색에서 분명 머뭇거림을 읽었다. 저는 직감이 좋았던 만큼 눈치도 어느정도 있는 편이었으니, 네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옅게 미소 띠며 자리에서 일어나 너를 꼬옥 안아준다.)
어떤 분이셨어? 할머니는.
(당신이 저를 안아주자, 잠시 의아하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미루어 짐작한다.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유는, 오해가 아닐 뿐더러 당신의 배려를 소중히 여기고 싶기에. 당신의 품은 늘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어떨 땐 절망스럽고, 어떨 땐 달콤하며, 지금은 또 요람처럼 안락하다.)
그냥, 평범한 할머니셨어요. 제가 유난히 잘 따르긴 했죠. 할머니 약과를 좋아했거든요. ...피곤하진 않으세요? 별로 재밌는 얘기도 아닌데.
너는 그럼 할머니의 강아지였네. 흐흐, 너가 사랑했던 또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프스스 웃으며 너를 안은 채 어기적 어기적 침대로 가 앉히고, 그대로 몸을 뉘인다. 노곤노곤한 기운이 덮쳐왔으나, 아직까지 너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생각에 눈이 쉽사리 감기지 않았다. 가령...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그러나 섣불리 묻기엔 조심스러운 영역이어서, 네 머리를 가만히 쓸어주기만 한다.)
왜, 자꾸 강아지가 되는진 모르겠지만요.
(그러고 보면 할머니한테도 우리 강아지 라고 불렸던 것 같다. 그냥, 사랑스러운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르고 싶은 걸까. 당신에 안겨 이동되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침대에 폭 안긴다. 부러 잠을 미루는 것 같은 당신의 눈가를 살살 쓸어내리곤 제 머리 위의 당신의 손을 꼬옥 붙잡는다. 베드 타임 스토리로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다정한 당신은 질문을 삼킬테니까.)
할머니는, 음, 오래오래 절 보살펴 주셨어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부터, 중학교 때까지니까 그래도 10년은 보살펴주신 것 같은데...그래서 괜찮았어요. 할머니께선, 형처럼 다정하고 포근한 사람이었어서.
... 부모님이. 그러셨구나.
(네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으나 이렇게 정이 가득한 너에겐 부모의 부재란 컸으리라 생각되어, 애도를 담아 네 손을 꼬옥 붙든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을 떠나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너는 어떻게 씩씩하게 그 모든 일을 혼자서 버틴걸까.)
할머니랑 가장 오래 같이 지냈네. 그래서 너가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거였구나. 보고싶겠다. 모두가.
(당신에게 이야기하면서도 당시처럼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때엔, 눈물 흘릴 곳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젠 상처가 잘 아문 덕이겠지. 당신을 놓치지 싫다며 고백할 적에 잠시 운 것으로 충분했다. 그 사람들을 흘려 보내고, 당신을 가득 채우기엔. 그러니 혼자 버틴 거라고도 할 수 없었다.)
형 말이 맞아요. 사랑이.. 가득한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보고 싶긴 하죠.
(잡힌 제 손을 살살 끌어와 기어코 당신의 손등에 입술을 맞춘다. 안도의 숨을 짧게 내쉬어보기도 한다. 그들이 보고 싶긴 해도, 예전처럼 외로운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래도 이젠, 형이 있으니까요. 이만하면 인복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형 이야기도, 해줄 수 있나요?
나 하나만으로도 인복은 푸짐해진다고들 하더라.
(가벼운 농조가 분위기를 살짝 띄우는 듯 했다가, 제 과거를 묻는 말엔 작게 침음 낸다.)
나는... 글쎄. 너랑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네. 부모님 없이 자랐고, 다른 누군가가... 내 경우엔 정부 기관이. 나를 대신 키워준건 너랑 같아. 근데 내 경우엔, 흐. 부모님의 사고는 어쩌면 나였던 것 같거든.
(동의의 의미로 미소를 지어보인다. 당신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 것 같지만. 새삼 마음의 크기를 느낀다. 정부가 당신을 소중히 키우진 않았지만, 제 할머니가 저를 학대한다고 한들 쉽게 떠날 수 있을리가. 당신의 어조를 보면 그때 여자가 속살거린 게 완전히 거짓은 아닌가보다.)
대체... 왜요? 형도 어렸을 적인데.
그야... 음. 내 부모님은 나한테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거든. 나보단 게임을 더 좋아하셨지. 옆집 친구가 어린이집에 갈 때 나는 도박장에 더 자주 갔었어.
(담담한 어조에는 슬픔을 애써 숨기는 기색 따윈 없이, 이제는 흐릿한 대상을 향한 지겨움이 조금 깃들어있었다.)
옆에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앞에서 반짝이는 화면만 보고있던 그 모습이 너무 싫었나봐.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래서 나도 그냥 거기서 걸어나왔던 것 같아.
(당신의 낯은 지겨워 보이면서도, 지쳐보였다. 당신의 말이 전부 끝날 때까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어서, 경청했음에도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당신의 손을 만지작 거리며 해탈의 경지에 이른 어른 당신을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본다.)
형은, 어렸을 때에도 용감했나봐요. 어린 아이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음, 혹시 제가 형을 앞에 두고 핸드폰을 해도, 싫을까요? 비슷한 감정이 들게 하고 싶진 않아요.
(들려오는 물음에 잠시 어리둥절해보였다가 흐흐 웃음을 터뜨린다. 네 손마디 여기저기에 쪽쪽 입술을 누르고,)
아냐, 그거랑은 다르니까 괜찮아. 부모님은 꼭 무언가에 정신이 팔리지 않아도 내 존재를 종종 잊곤 했거든. 대부분의 시간은 돈을 쫓아다니느라 나에게 관심을 못 준 것도 있어. ...사실 용감하다고 하기엔, 그 어린 나이에 내가 무슨 생각으로 부모를 제 발로 떠나왔는진 모르겠네.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어. 최근에 만났을 땐 더 엉망이었거든.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해본 거였는데, 당신이 웃어버리면 저도 맥이 탁 풀려 미소를 짓게 된다. 당신은 손에 입을 맞췄는데 제 마음이 간지러운 느낌에 손가락을 꼼질거려보고.)
어떤 이유든 어린 아이를 그런 장소로 데려가는 건 용납하기 어려워요. 심지어, 최근 당신을 찾아오는 행동까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그런 걸 부모나 성애라는 이름을 붙혀도 되는걸까.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들어, 표정을 갈무리해본다.)
어릴 때의 형은, 음, 용맹한.. 고양이를 닮았을 것 같아요.
(별 이유는 없었다. 곱슬머리 사자가 더 어울리겠지만은, 사자라하기엔 당시엔 작고 앙증맞은 당신이었을테니.)
(누구는 아이치고 별종이라고, 혹은 부모도 찾지 않는게 징그럽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으나 너가 짓는 껄끄러운 표정은 저를 향한 것이 아님을 느끼고 나면 마음이 한층 편안해진다. 솔직히 즐거운 얘기는 아니었으니까. 마음 한 켠에선 너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했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은 결국 고양이인지라. 키득키득 웃음이 터지고 만다.)
고양이? 멍멍이가 할 말은 아닌데.
(장난을 치듯 네 머리를 슬슬 헝클였다.)
(그래서 당신의 기록에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구나 싶다. 당신을 흔들기엔 너무 가소로운 존재였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도 당신의 기분과 그들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을 테니. 당신이 만진 제 머리가 눈가까지 내려오면 두 눈만 깜빡거리다 당신을 꾹 품에 안는다.)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자꾸 강아지, 멍멍이라고 하는 거에요?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칭찬 같기도 하고,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아, 그야... 닮았는걸? 너가 나한테 고양이라고 한 거랑 비슷한 이유일걸. 순하고, 말랑말랑하고. 너무 착해서, 내 말도 엄청 잘 듣고. 너한테 귀랑 꼬리가 달렸다면 분명 엄청 어울렸을거야.
(베시시 웃으며 품 안에 얼굴을 부빈다.)
그럼, 칭찬이라고 생각할게요.
(순하고...말랑하고...착...한가. 절대 동의하진 않으면서도 굳이 부정은 안했다. 누누히 생각했듯 당신에겐 그렇게 보일 수록 좋으니까. 당신의 발목을 간지럽힐 꼬리는 없어도 다독일 손은 있으니, 당신이 편히 잘 수 있도록 등을 도닥인다. 한동안 느릿하고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인 손이 서서히 멈추면, 깊은 잠에 든 듯, 평온한 낯이다.)
(토닥토닥, 포근한 다독임이 저를 졸립게 만들긴 하는지 두 눈이 가물가물하게 감긴다. 너의 체향으로 가득한 품 안이 꼭 커다란 요람 같아. 깊은 잠으로 미끄러지기 직전 네 목덜미에 입술을 꼬옥 누르고 속삭인다. 잘자, 내 강아지. 베시시 띠운 미소는 이내 너와 함께 색색거리는 숨을 맞추며 잔잔히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