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빠른 걸음으로 쫑쫑쫑 다가와 당신을 푹 안는다. 여태 에어컨 아래 있었던지라 제법 서늘한 몸.)
보고싶었어요.
으응, 설아아.
(드디어 보고픈 이의 품에 안기면 꺄르르 웃으며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하루가 너무 길다. 오늘 뭐했어?
그러게요. 그냥, 있었어요.
(당신 허리에 두른 손 좀 더 끌어안는다. 붉어진 귀에 조금 떨리는 어조.)
형은 많이 바빴죠?
정부한테서 벗어났다고 한가롭게 쉴 수 있을거란 건 착각이었나봐.
(품에서 나와 네 손을 잡고 걸음을 마저 옮긴다. 다른 손에 들린, 꽤 빵빵한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형이 너무 유능한 것도 탈이네요.
(당신의 손이 평소보다 따듯해 걱정이었다. 그보다 제게 꽂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무겁지 않아요? 뭘 그렇게 많이 샀어요?
이것저것. 너가 단 거 좋아하니까, 여러가지 사왔어. 양갱, 아이스크림, 초코바, 뻥튀기, 푸딩,..
(조근조근 달달한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
(제가 좋아하는 입술이 좋아하는 것을 끝없이 읊는다. 귓가가 홧홧하다.)
그럼 형꺼는요?
... 나 한 입씩 안 줄거야?
(숙소 입구 앞에 우뚝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를 올려다본다.)
나눠먹어요.
(당신이 그렇게 저를 보는데 어떻게 아니라고 하나. 당신에게 돌아가 손을 잡고 숙소로 들어간다.)
민초도 사왔어요?
(장난처럼 쏘아올린 눈빛은 금방 거두고 흐흐 웃어버린다. 묻는 말엔 또 슬쩍 눈을 굴려 네 눈치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다 먹을게.
형이 민트초코를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 제 돈 주고 먹지 않을 뿐. 제가 잡은 당신의 손 한 번 쓸어보고.)
말했잖아, 나 정말 거르는 거 없이 다 먹는다구. ...민트초코 먹고 뽀뽀해도 받아줄거야?
키스해도 괜찮은데. 뽀뽀만 할 건가요?
(탁자 위에 올린 봉지를 풀어헤치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바스락거린다.)
나중에 가서 다른 말 하기 없기야.
제가 왜 다른 말을 해요.
(당신이 꺼낸 것들을 냉장고와 냉동실에 정리하며 웅얼거린다. 웃음기가 잔뜩 묻어난다.)
형이야말로 피하면 안돼요.
으음. 바닐라에 민초 섞어 먹는 건 처음인데.
(네게 안 보일 만큼만 입꼬리를 슬 올리며 초록색 콘 하나를 꺼내든다. 바닥에 털썩 앉아 포장지를 까더니 혀를 내어 살짝 핥아보고.)
대부분 처음일걸요...궁금하세요?
(당신의 대답에 따라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결정하려는 듯 냉장고 앞을 떠나지 않는다.)
이따가 알게 되겠지.
(그 뒷 모습을 지켜보다가 일어나 다가오더니 어깨 위에 턱을 올려 시야를 공유한다.)
어떤 걸 고민 중인거야?
형이 그 둘 섞은 맛이 궁금하면..바닐라를 먹고, 안 궁금하면 나중에 먹으려고요.
(당신의 머리에 제 머리 톡 기대보고.)
안 섞어도 괜찮으니까 너 원하는 걸로 먹자. 내일도 나갈 일 있어서 또 사오면 되거든.
(고개를 네게로 살짝 돌리면 상큼하고 달달한 향이 풍긴다.)
다른 말 하지 말라는 건 형이었으면서.
(그럼,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곤 냉동실 닫는다.)
형한테서 민트향 나요.
안 한다곤 안 했는데.
(곁의 볼을 훔치듯 냉큼 쪽 뽀뽀하고서 떨어진다. 매트리스 위에 털썩 앉아 민트 아이스크림을 마저 베어문다.)
(당신이 쪽 소릴 내면 얼굴이 붉게 익는다. 부스럭 거리며 봉지 버리고 아이스크림 입에 문 채 당신 옆에 앉는다.)
형은 싫어하는 음식이 정말 없어요?
여태 없었던 것 같아. 뭐든 있을 때 먹어야 하는걸.
(다시 저 볼에 입을 맞추면 차갑게 식은 입술 때문에 더 뜨겁게 느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것도 행운의 영역인 걸까. 음식의 실패가 없는 삶. 아이스크림을 둥글게 오물거리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면.)
드셔보실래요?
(고갤 끄덕이곤 내밀어진 하얀 막대로 고개를 내려 입에 머금는다. 츄웁,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입에 가득 담고 눈을 굴려 널 한번 올려보았다가, 싱긋 웃는다.)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얼굴이 탈 것 같다. 싱긋 웃은 당신의 입술에 제 입을 붙이곤 혀 끝를 세워 톡톡 두들긴다.)
(입술이 붙어오면 웃음소리가 입안에 묻힌다. 따스한 너의 목덜미에 한 손을 얹고 두들김에 입을 열면 차가운 크림을 머금은 혀가 네게 사르르 감기고 부벼왔다.)
(혀로 당신을 맛보면 크림의 달짝지근한 맛 그리고 상쾌한 향이 느껴져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크림 탓인가, 가볍게 얽는데도 찐득하고 노골적인 소리가 나고.)
...살다살다 아이스크림을 부러워해보네요.
(혀를 가볍게 훑으며 고개를 떼니 뭔가 떨떠름한 듯한 네 표정이 보여서 웃음을 꾹 삼킨다.)
왜, 너도 맛있는데.
(보란듯이 또 가볍게 쪽, 입술에 뽀뽀한다.)
둘을 섞을 생각을 대체 누가 한 건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혀를 섞다가 만들어진걸까. 당신의 순 닿았던 제 것을 핥아보곤.)
형 입술도 달아요.
내가 알기론, 영국 왕실의 아이스크림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려고 시도해본 새로운 맛이었대.
(입술로 시선이 한동안 머무르다가 다시 민트 크림을 한입 베어문다. 상큼하고 달달한게 기분이 좋았다.)
(그 사이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혀로 죽 핥아올리면 줄이 그어진다. 입 안에 혀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시도해보는 건 좋은 거죠.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낼 정도며 정말 우승하고 싶었나봐요.
그게 공주님의 입맛에 딱 맞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긴 막대를 핥아올리는걸 지켜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예전에 처음으로 제 방에 재워준 그 날의 어느 모습과 겹쳐지려고 해서,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과자 부분을 깨작인다.)
형도 공주님 같아요.
(자연의 사랑을 받는 거나, 민트초코를 즐겨먹는 입맛까지. 노래도 잘 부르고. 영락없이 영화 속 공주님이네.)
형 입맛에 맞게 새로운 걸 많이 시도해봐야겠어요.
세상에 이런 공주님이 어디있어.
(난생 처음 듣는 호칭엔 큭큭 웃으며 볼을 붉힌다.)
그럼 설이가 날 구하러 와줬으니 너가 내 왕자님 하자. ...내꺼 한 입 더 시도해볼래?
여기 있잖아요.
(어깨를 으쓱이며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깔짝거리다가, 당신의 물음에 끄덕임 대신 고개를 기울여 당신의 순을 핥는다.)
...아.
(선명하게 입술에 느껴진 혀의 느낌이 평범한 키스보다 더 야하게 느껴졌다. 귓가의 열은 그래서 오른 거겠지. 단말마의 탄식 뒤에 속삭인다.)
아이스크림 말한거였는데.
(들리는 말에도 촉 소리를 내며 말랑한 당신의 구순을 뭉갰다가 떨어지곤.)
이 쪽이 더 맛있잖아요. 음.. 이런 어리광은 별로에요?
(입술이 눌리고 비벼질 때마다 달달한 초코향이 코 끝을 스쳤다.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익살스런 혀를 내어 낼름 훔쳐보고 큭 웃는다.)
별로라고 해도 어차피 할 거였잖아.
(간지러움에 목덜미가 오소소 떨렸다. 저도 민트초코를 단순한 맛이 아니라 당신의 혀로 먼저 맛봤으면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제가 어리광이 많은 편인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별로면 줄여야죠.
아니, 귀여워. 좋아.
(줄어들까봐 냉큼 입술을 드밀어 두어번 더 쪽쪽 훔쳤다. 이제는 초코 향이 옅어지는게 아쉬워서 아까보단 좀 더 진하게 빨았던 것 같다.)
처음에 널 봤을 때, 어리광이랑 애교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제가 유난히 단 걸 좋아하지만, 당신의 입술을 지나치게 좋아하진 않는가. 기울인 고갤 바로 하지 않고 당신을 얌전히 기다리는 걸 보면.)
그야... 형한테 사랑 받고 싶으니까요.
(아, 정말 귀엽다. 사랑이 고프다며 저를 삐뚜름하게 바라보는 저 얼굴이. 하지만 해바라기도 예쁜 꽃잎을 뽐내고 활짝 피어야 햇살을 부어주는걸. 손에 든 아이스크림이 녹는지도 잊은 채 끈적하게 흘러내리는데도, 네 입술로 이끌려선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멈춘다.)
그렇게나 일찍이었어?
(혹여 행동이 크면 당신이 달아날까, 작게 끄덕이면 코끝이 살짝 스친다. 에펠탑을 코 앞에 두고 그것을 찾는 바보처럼, 지나치게 큰 감정이라 자각하는 게 느렸지만. 밤처럼 고요하게 속삭여본다.)
형에게 미움 받고 싶던 적이 없어요. 한 번도.
난 너한테 미움 살 짓을 그렇게나 했는데.
(쓸쓸한 웃음이 얼핏 드러난다. 내리깐 시선으로 더욱 다가오다가, 툭. 입술 대신 이마를 맞댄다.)
나도 이젠 없어. 너한테 미움 받을 용기.
그땐... 많이 서운하고 또 스스로가 미웠는데.
(당신의 말에 살짝 눈을 감고 전해오는 온기를 느낀다. 저는 당신에게 거짓말 같은 거 할 줄 모르니까, 이전의 말도 이후의 말도 전부 진실이다.)
더 무섭고 서러운 게 있다는 걸 아니까, 이젠 괜찮아요.
(그건 어쩌면 너와 내가 공유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너와 더 이상 함께 하지 못 해서이고, 그런 탓에 나의 행운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천은 너가 된지 오래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상처에 가슴이 떨려서, 입술을 도로 맞물렸다. 가지 않겠다는 너를 애써 붙잡듯이.)
...사랑해.
(당신이 저를 실컷 가지고 놀아도 괜찮다. 제 피웅덩이 속에서 헤엄쳐도, 제 깊은 상처를 무대 삼아 즐겨도 괜찮았다. 절 떠나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좋다고 했으니 조금 더 어리광을 피워본다. 당신의 허리를 파고드는 손과 부딪쳐오는 구순.)
더요. 더 들려주세요.
사랑해.
(네 마음에 돌을 던져 한번 더 파문을 일으켜본다. 그것이 파도가 되어서 제 가슴도 이리 뛰는거겠지.)
사랑해, 설아.
(네 품에 몸을 조금 더 기대어 연신 조곤조곤 속삭인다.)
(당신이 사랑을 입에 담을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당신만은 몰라야 할텐데. 제게서 도망가면 어떡해. 당신의 사랑이 벅차 숨이 가쁘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어요. 형이 너무 좋아요. 사랑해요.
(행운 조절 능력자인 제가 가장 많이 힘을 기울여 이룬 것이 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널 만난 거라고 고백할 것이다. 초침은 우리 둘을 기다려주지 않아도 기억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영원하겠지. 너의 체향과 떨림, 그 모든 걸 지금의 애틋한 감정에 수차례 새겨넣는다. 안타깝게도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은 그러지 못했지만. 눅눅해진 콘 아래로 샌 민트 크림이 손을 타고 흐르자 품에서 퍼득 나와 콘을 입에 넣었다.)
에크, 이거 어허캐.
(너무해라. 당신의 손을 제 손가락으로 훑어 제 입에 가져가곤 얼굴을 찌푸린다. 실은 텅 빈 품에 이미 찌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민트 초코 진짜 싫어요.
(어린 투정에 눈매를 휘며 웃음을 터뜨린다. 와플 콘은 금방 입으로 우물우물 사라졌지만, 저 삐진 얼굴은 어떻게 녹여준다. 끈적해진 손을 쪽쪽 빨아내고 제 손을 닦아주느라 끈적해진 네 손마저 끌어와선 엄지를 살살 핥았다. 기분 풀으라는 양.)
(정말 웃고 넘어가도 되는 작은 투정이었음에도, 당신이 손만 잡아줘도 풀리는 토라짐이었는데. 차가워진 혀에 뜨거워진 제 손가락을 살며시 눌러본다.)
...부드러워요.
(꼼꼼히 피부 결을 따라 혀로 쪽쪽 핥아올렸다. 달달한 맛이 더 이상 남지 않을 때까지 엄지와 검지 사이로 혀를 놀리며. 말간 눈을 네게 맞추고 입에서 손가락을 츄읍 빼낸다.)
음... 뭔갈 더 먹어야 하나?
(간지러움과 묘하게 야한 기분에 손가락을 움츠릴 듯 굴다가도, 당신에게 묻을까 걱정이 됐다.)
배고파요? 아직 저녁 안 먹었어요?
아니, 저녁은 먹었는데, 먹다보니까 입이 심심해졌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왔던 뻥튀기 봉지를 보스락거리며 침대에 가져와 뜯었다.)
근데, 설이 너는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 생각이야?
(당신이 잠시 일어나면 저는 물티슈를 찾아와 제 손을 훑곤, 돌아온 당신의 손도 꼼꼼하게 닦아준다.)
...글쎄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과자 하나를 집어들어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손이 잡히자 동작을 멈춘다. 이거 마치 아기 손 씻기는 엄마 같기도 하고. 과자를 대신 네 입으로 슥 가져간다.)
요즘 집을 좀 알아보고 있거든. 여기서 계속 있기엔, 아무래도 나도 이제 곧 성인이고.
(제 입에 다가온 과자를 베어물으면 작은 소리가 났다. 오물거리며 두 손을 닦은 그가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늦는 귀가 시간과 당신의 행선지들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추론이라 놀랍진 않았다.)
그러니까, 큼. 방을 원룸으로 할지, 투룸으로 할지부터가 고민이야.
(여기까지 말하곤 네 눈치를 슬쩍 본다. 혹여나 너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사귄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 할 수도 있으니까.)
여긴 침대도 없고, 좁기도 하고...
(기껏 주소를 알아내려는 시도를 떠올리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조금 벙한 낯이 느릿하게 당신을 보다가, 그대로 당신의 목덜미에 더운 얼굴을 묻는다.)
형이랑 매일 붙어있을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요.
(요지를 금방 캐치한 너를 안고 흐흐 웃는다. 검은 머리칼을 살살 쓸어주며)
아무래도 너만의 작업실 겸 각 방이 있는게 좋겠지? 욕조도 기왕이면 있는게 좋겠고.
작업실은 지부로 출퇴근하면 되긴 해요. 있음 좋겠지만... 욕조는, 형 취향대로.
(당신의 어깨에 이마를 부비적거리며 대답하다가, 조금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덧붙힌다. 침실에서 쫓겨난 어린 신랑마냥 꼬리가 있다면 축 늘어졌겠다. 정작 침대에서 먼저 지치는 건 저인데도.)
...우리 각 방 써요?
너 주로 재택 한다며. 출퇴근은 다짐했다가 집에만 콕 박혀있을 너가 눈에 선해.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간지러워서 바르작거리다가 시무룩한 음성에 멍하니 눈을 깜박인다. 큽, 하고 웃음을 참는 듯한 소음이 뒤잇고. 모르는 척,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왜애. 침대는 합쳤으면 좋겠어?
(...물론 집에서 노트북으로도 처리할 순 있다. 모니터가 하나라 조금 불편하겠지만...턱을 당겨 느리게 끄덕거린다.)
안되나요?
...너가 아침마다 힘들 것도 눈에 선한데.
(조곤조곤 귓가에 속삭이곤 그 위로 쵹, 입맞춘다.)
...너가 아침마다 힘들 것도 눈에 선한데.
(조곤조곤 귓가에 속삭이곤 그 위로 쵹, 입맞춘다.)
그럼 침실 하나에 각방 한 개씩. 어때?
(어리광 피우는 네가 귀여워서 자꾸만 놀리게 되네. 꼬옥 안겨온 몸을 살살 어룬다. 함께 살면 이렇게 밤마다 있을 수 있겠지.)
집 구하면, 알려줄게.
좋아요. 기다릴게요.
(그럼, 당신은 내일도 바쁘겠네. 몸에 힘을 꾹 줘 당신을 침대에 눕히곤 흐트러진 셔츠 사이, 쇄골 위를 깨작깨작 씹더니 깊게 빨아들인다. 살살 핥기까지하면 진한 표식이 남았다. 떨어져있어도 언제나 제 생각하라는 듯.)
으... 하.
(아리다. 네 목을 꾸욱 감싸안고 눈을 질끈 감아 잇새로 옅은 신음 뱉는다. 쇄골 부위를 보면 붉은 잇자국이 번들거려서, 픽 웃음 흘린다. 소유욕인지, 아니면 어린 치기인지.)
멍멍아, 자꾸 물래.
(당신의 귀에 쪽쪽 거리던 그가 옆에 누워 당신을 안다가, 들리는 말에 작게 웃는다.)
강아지가 주인을 무는 이유엔, 장난이나 소유욕도 있대요. 이 사람 내꺼, 하고.
설마 했는데 소유욕이 맞구나?
(곱슬거리는 옆머리를 시트위에 뉘이고 너를 바라본다. 포근하니 이불 위에 너와 이렇게 몸을 붙이고 있는게 기분이 좋아.)
왜. 내가 다른 강아지 만날까봐?
그건 상관없는데, 그냥, 제 생각하라고, 물어봤어요.
(어느새, 당신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풀어내며 손장난이다.)
난 항상 설이 생각 하지.
(눈을 천천히 깜박이다가 느릿하게 감는다. 머리를 매만져주는 것도 좋아.)
다른 강아지 만나도 상관 없다는 건 좀 의외네.
(저도 모르게 묘한 미소를 짓곤 당신 눈치를 보며 표정을 갈무리했다.)
형은 제 주인이잖아요. 다른 강아지의 주인이 되실 것도 아니고...
(주인... 그 단어를 입 안에서 한번 더 곱씹으며 너를 감싸 안은 손을 옷 안으로 살짝 넣어 허리를 지분거렸다.)
그건 아니지만, 길 가다 만난 강아지가 귀여워서 조금 쓰다듬어 줄 수도 있지.
(허리를 꾹꾹 눌러오는 당신의 손에 귓가가 조금 붉어진다. 당신에게 입을 맞추는 제 입술이 조금 팽팽할지도. 그 강아지가 사라지면 당신이 슬퍼할까, 모르겠다.)
주인이 되서, 형 강아지가 어떤지 잘 모르는 것도 곤란해요.
나 조금은 주인치고 형편 없을까?
(흐흐 웃으며 자세를 조금 고쳐 모로 눕고 한쪽 팔로 머리를 기대었다. 여전히 허리춤을 살살 쓰다듬듯 문지르는 중이었다.)
그럼, 알려줘. 우리 쿠키는 어떨 것 같아?
(입술에서 시작한 그의 입맞춤은 턱 끝으로, 목덜미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온다. 고갤 숙여 핥짝거리는 소릴 내며 춥, 자국을 계속 만든다. 당신만 알고, 모두는 모를 곳에.)
물거에요. 그 강아지.
(셔츠 단추를 언제 푸른 거지. 으응, 하고 작게 콧소리 내며 자세가 도로 무너진다. 조금은 타이르는 투로 입을 열고.)
강아지, 읏. 버릇 나빠. 이거 며칠은 갈 거란 말이야.
주인님이 벗지 않는 이상 보일 일도 없는 걸요.
(그 자국을 피어싱으로 살살 긁고는, 그대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제가 다른 강아지 물게 하실 건가요?
아흣...
(갈작거리며 뭉툭한 금속구가 아릿한 피부 위를 긁자 저도 모르게 샌 신음에 스스로 흠칫 놀라 입을 다문다. 내려다보는 두 눈이 조금은 곤란한 기색을 띠었다.)
설이, 그렇게 사나울 줄은 몰랐네.
형이, 다른 남자를 만진다니까, 그만.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잇는다. 어조와 달리 파고든 손은 허리를 꾹 껴안았고, 얼굴을 옷 틈으로 들이밀었다. 쪽쪽거리며 당신의 가슴을 혀로 굴리고 허리를 만지작거린다.)
으...흣, 그건. 그냥 다른 후배 예뻐해주는 거 정도로...
(간지러워. 아니 그보다... 이렇게 자꾸 가슴이 물리고 핥아지면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데. 허리를 바짝 휘어 하체를 네게서 떨어뜨려놓는다. 눈을 살풋 내리감고 피부 위로 남은 자국을 세어본다. 정말로, 꽃잎이라도 여럿 묻은 것 같다.)
조금 덜 예뻐해도 되잖아요.
(단순 텍스트의 나열임에도 타는 듯한 질투를, 너무 어려보일까봐, 속 좁아보일까봐 참아온건데. 당신의 반응을 찬찬 보며, 점점 세우기 시작한 그 첨단을 심술처럼 딱딱한 것으로, 툭, 튕겼다.)
저만 예뻐하라곤 안 하겠지만..
(이렇게 곤란한 순간에도 저 질투어린 볼멘소리가 귀엽다고 느껴진다면 저도 단단히 네게 빠진거겠지. 힉, 숨을 얇게 삼키며 허리를 움찔 튕긴다. 딱딱한 구슬이 누르고 간 핑크빛 살점이 여지없이 더욱 도독하게 모양을 세운다. 그거, 너무... 작게 웅얼이며 네 어깨를 살살 밀어낸다.)
그, 럼... 쓰다듬는 건 괜찮아?
아시면서 물어보시는 거에요?
(주변을 맴돌 듯 둥글게 핥다가 입술을 붙힌 채 당신에게 물어본다. 어느 정도 드러내도 되는걸까. 정이 많은 당신을 위해 한 발자국 물러나기로 한다. 어찌나 물고 빨았는지, 당신의 피부가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린다.)
꼭, 업무 상 쓰다듬어야 하는 거면, 저도 이렇게 질투하진 않아요.
(입술이 눌린채 웅웅 울리는 말소리마저 찌릿한 쾌감이 된다. 으응, 작게 흘리는 불만스런 성음이 입술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입자국을 잔뜩 남겨놔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흥분감을 꾹꾹 누르려는듯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풀어헤쳐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제 가슴팍을 도로 여민다.)
그럼 손 닿는 거는. 알다싶이, 가이딩은 받아야 하잖아.
그것도 달갑지는 않지만... 형이 아픈 게 더 싫으니까요.
(서서히 가려지는 제 흔적을 가만 지켜본다. 원하는 바는 이루었으니 미련없이 당신과 눈을 맞춘다. 아무 일 없었다는 양, 흐트러진 당신의 머리를 정리한다.)
모든 스킨십을 제게 물어보려고요?
쓰다듬는 것도 싫다고 하길래. 너가 싫은 건 나도 싫은걸. 너랑 사귄 이후로 점막 가이딩은 안 받아왔어.
그래도.. 수치가 괜찮아요? 형은 점막 가이딩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그건 별 말 안했던 건데.
수치야... 천천히 올리면 되지. 정 안 되면 약을 받아먹고.
(프스스 웃는다. 최근 들어서는 규모가 큰 임무에 맡겨지질 않아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확실히 전 보다 피로도가 누적되는 느낌이 있긴 해서.)
그래도, 널 두고 다른 사람과 뽀뽀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
(충분히 공감했기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당신을 구한 날의 가이딩은 맛이 지독히 쓴 감기시럽같았으므로.)
그래도 너무 아프면 해야해요. 키스는, 다녀와서 저랑 하면 되니까요. 가아딩 한 만큼.
너랑 더 많은 걸 한다고 이전에 다른 사람과 했던게 사라지는, 그런 공식이 아닌데.
(흐흐 웃으며 네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너도 마찬가지야. 난 너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해. 내 알량한 질투심보다도. 그러니까 가이딩 받을 때 내 생각은 하지 마.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잖아요.
(그와 별개로 당신과의 입맞춤은 늘 기분이 좋으므로. 당신의 쓰다듬을 받으면서도 의문이 그득 찬다.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 가능키나 한가. 그 뿐만 아니라.)
형도 질투해요?
... 널 사랑하니까.
(내리깔려 시선을 살짝 피하는 얼굴이 작게 웅얼인다. 너는 장난이었다곤 전에 언급했으나, 단체 데이트 때 다른 사람 손을 잡고 간 것도 그렇고, 보드게임을 할 때 타인과의 접촉을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냐고 묻는다면, 글쎄. 저가 듬직한 형으로서 네게 보이고 싶지 않은 면이라고만 해두겠다.)
(아무리 사랑과 질투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라고 하나, 뒤집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니까. 당신의 말이 기뻐서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궁금해요. 형이 질투하는 모습.
난 그런거 티를 잘 안 내는 편이라. 여태 너한테 보여준 적 없을거야. 아마 앞으로도 없을거고.
(없어야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환하게 휘어진 네 입가를 콕 짚었다.)
(당신이 콕 짚은 손가락에 제 입술을 부비고 혀로 핥짝거린다. 그렇지만, 궁금한데. 그래도 조급하게 보고 싶진 않았다. 앞으로 오랜 시간 함께할텐데. 한번을 못볼까.)
형이 티를 내지 않아도, 제가 알아채볼게요.
내가 질투하는게 보고싶어? 그렇다고 막... 일부러 그런 걸 하게 하진 않을거지?
(이렇게 제 손을 가지고 놀듯, 너도 장난기가 꽤 있는 아이였으니까. 검지에 닿인 말캉한 혀를 살짝 눌렀다가 미끄러뜨려 빼냈다.)
제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에요. 형이 그런 걸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고요.
착하다.
(흐흐 웃으며 볼에 쪽 뽀뽀한다. 너를 그대로 꼬옥 끌어안고 몸을 뒤로 뉘이면, 두 몸이 푹신한 침대 위로 나란히 놓인다. 침대 구석이 놓인 상어 인형을 손에 쥐고 네게 살살 헤엄치는 시늉으로 내밀고.)
(당신이 뽀뽀해주면 눈을 살풋 감으며 얼굴을 붉힌다. 질투고 뭐고, 당신이 저를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나. 더불어 함께 있다는 사실도. 내밀어지는 상어의 코를 꾹 누른다.)
안 착해요. 형만 그렇게 생각할 걸요.
(왁왁, 상어 주둥이를 네 팔뚝에 꾹꾹 누르며 먹어치우는 시늉을 하며 꺄르르 웃는다.)
왜, 이렇게 순해서는 개미 한 마리 못 해칠 것 같은 넌데.
(상어의 주둥이를 잡으면, 얼굴이 꾸압 찌그러지면서 한 손에 들어온다. 저는 상어대신 직접 당신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형 앞에서는 못 죽이죠. 놀라실 거잖아요. 제가 그러면.
...
(순간 동작을 멈추고 너를 찬찬히 뜯어본다. 어딘가 싸늘해보이는 낯이 너무 낯설어서, 불쌍하게 찌그러진 상어를 손에서 빼내어와 제 품에 담는다.)
...해봤어?
(당신의 품에 안긴 상어를 매만지며 원래 상태로 돌린다. 표정에 별 다른 변화도 없이 병주고 약주고가 따로 없다. 숨길 수야 있겠지만, 거짓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절 사랑하시나요?
모두 날 위해서였던 거지?
(학교에서부터 칼을 든 제게 동료의 명줄을 건네준 것도, 저를 가둔 기관 내 정부원들을 제거한 것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그 시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봤었다. 네가 한 짓이라며 상당수의 사진 자료를 받아봤으나, 믿지 않았었다. 그저 너와 함께 출동한 이들이 저지른 짓일거라고 막연히 믿기를 미루어뒀다. 저가 기억하는 너는 훨씬 여린 아이였으니까.)
절 위해서였어요.
(당신을 위한 것이 저를 위한 것이니, 순 거짓은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꺼림칙 할까 싶어, 애꿎은 상어만 만지작거린다.)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나오자 미소가 옅게 흩어진다. 그러니까 이건, 우려였다. 너가 아무리 똑똑한 아이여도 아직은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고, 그만큼 생명에 대한 가치관이 흐릴테니까.)
그래도.., 그 분들은 살려뒀던데. 내 전담 간부랑... 가이드 말야.
보고서를, 봤나보네요.
(당신의 행운이 당신의 눈을 가려주진 않았나보지. 서늘한 분위기가 추웠다. 분명 제가 저지른 것에 죄책감과 후회가 일절 없음에도, 당신의 말이 질타처럼 느껴진다는 것 하나만으로 섬뜩했다.)
물어보시면, 언제나 그랬듯 솔직하게 답해드릴게요. 왜, 살려두었는지 궁금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였잖아. 심지어 널 닮은 기계 조작 센티넬까지도.
(덤덤한 목소리엔 다른 의중은 없이 오직 호기심만 서려 있었을 뿐이다. 살짝 굳어있는 너를 보며 인형을 품에 대신 안겨준다.)
왜 둘은 남겨둔거야?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이런 헝겊이 아닌 당신의 품인데도. 간절한 만큼 묻어있는 당신의 체온에나마 기대본다.)
...그들에겐 죽음이 자비라고 생각했어요. 제 몫이 아니기도 했고요.
날 위해 남겨둔거구나.
(베키에겐 영구적인 장애를 만들었다고 했으니 죽음이 자비라는 너의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선을 내리깐다.)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상할까?
(당신의 첫 문장에는 인형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물음에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꼭 복수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만... 그들이 그대로 죽었다면, 형이 이런 고민해볼 기회조차 없었을 거고, 제겐 그걸 뺏을 자격이 없어요. 그뿐이에요.
(너의 머리를 살며시 끌어와, 고마움을 담아 너의 이마에 입술을 누른다.)
어려워. 분명 날 죽이려 했던 사람인데도, 완전히 미워하는 마음만 담아서 볼 수가 없는게. 그래도 날 거둬준 분이긴 한 걸.
(당신의 온기가 제게 닿은 것만으로도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한결 따스해진다. 그리고 이해했다. 저도 해봤던 고민이니. 단지 상대가 당신이었을 뿐.)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후회만 하지 않으시면, 된다고 생각해요.
...너도 후회 한 적 없는거지?
(어떤 걸 물어보는 걸까. 당신을 용서한것? 살인? 그들을 살려둔 것? 어느 쪽이든..)
네.
...이왕, 형이 후회하지 않았음 좋겠지만, 항상 곁에 있을테니, 마음 가는대로 하세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도로 돌려 반듯이 눕는다.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는 눈이 무언갈 곰곰히 고민하는 듯 했다. 어쩌면 그건 잠들기 전까지 이어지겠지.)
...잘자, 설아.
(망설이는 듯, 멈칫한 손이 당신의 손 하나를 덮었다. 혈내나는 손이라, 당신이 뿌리쳐도 할 말은 없지만, 당신에게 말했듯, 후회 할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 늘 했던 굿나잇 키스는 하지 못했다. 다만, 오랜 습관으로.)
사랑해요, 형.
(다가온 손을 기다렸다는 듯 잡아쥔다. 또 무언가 허전한데. 아, 그래. 고개를 옆으로 돌려 네 입술에 가볍게 입맞추고.)
사랑해. 설아.
(제 손을 쥐고 제 입을 맞추는 당신은, 제 죄를 사하러 온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의 본심은 아니겠지만, 당신을 꼭 껴안은 채 고갤 끄덕이곤 잠을 청해본다.)
(당신과 나란히 붙어 누워있던 몸이 움찔거리다가, 기어코 감고 있던 눈을 확 뜬다. 암막커튼 탓인지, 시간조차 알 수 없는 어둠 속, 희뿌연 기계의 빛들만 겨우 떠있다. 잠이 많은 그는 이렇게 단번에 깨는 일이 본래 아주 드문데, 요즘은 또 유달리 익숙해보인다. 그의 두 눈 모두 드문 불빛이 비추어 희미한 당신의 낯에 박혀 깜빡이지도 않는다. 저도 모르게 당신의 목 아래 제 팔을 끼워뒀는지, 살짝 들어 당신의 맥박을 재어보고, 제 숨을 참은 채 당신의 새근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아니야. 그래도 믿을 수가 없어. 기어코 몸을 슬쩍 들어올려, 안경을 끼곤 컴퓨터 하나를 원격으로 제어한다. 타는 듯이 밝은 빛에 여러 번 해본 이능 사용인 듯 조도를 낮추고 당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온 몸을 타고 흐른 식은땀 탓인지 목이 번들거렸다. 정확히 제 옆자리의 좌표가 뜨고 이런 저런 당신의 활동 등을 확인하고서야, 모니터를 끄고 다시 몸을 원위치 시킨다. 숨을 죽인 채 당신의 숨소리와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상념한다. 차라리 제 손으로 당신을 죽음까지 몰고 갔다면, 이토록 불안하지 않았을 터. 스스로 모르지 않았다. 당신을 용서하는 것에 순수히 좋은 의도만 있지 않았음을. 당신을 위한 마음만 있진 않았다. 단지, 당신이 없으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아서. 당신만큼 저를 직시한 사람이 없었고, 저와 대화해준 이가 없었기에. 사실 저를 위한 일이 아니었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계산을 하면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저를 포함해 얼마만큼의 폰이 들어도, 당신이라는 퀸을 잡을 수 있다면… 그럼에도, 저는 당신을 사랑한다. 누누히 가정해보아도 그건 게임의 룰만큼이나 명료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계산 과정을 제거하고 당신을 구하러 갈 수 있었을리가. 그 이후 후유증이 이토록 불안하고 애석할 수 없었다. 가만가만 숨만 쉬며 당신의 작은 뒤척거림마저 눈에 담다가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내버려둔 채 스르륵 다시 잠에 든다. 고되고 긴 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