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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데. (뽀득 그릇 닦다가 떠나는 둘에게 손 흔들어주고..)
(뽀득)... 다들 이제 갔네.
(끄덕. 마지막 그릇을 거품칠해 당신에게 건넨다. 고무장갑을 잘 정리해두고. 미뤄둔 모닝 뽀뽀 쪽.)
(쪽 소리 뒤로 흐흐 웃음소리 낸다. 깨끗하게 헹군 접시를 건조대에 올려둔 뒤 수건에 닦은 촉촉한 손으로 너를 뒤에서 안는다.) 나 어제 언제 잤어? 기억도 안 나.
(뽀뽀 이후 옷장에 이불들 개어넣다가 제 허리를 감싸는 당신의 손, 한 번 잡고, 그대로 뒤를 돌아 당신 본다.) 수현 형이 연애상담하면서.. 였던 거 같은데요. 요즘 피곤했어요?
너네 말소리 듣고 있으니까 너무 푸근해서 나도 모르게 잤어. 수현이, 은총이 때문에?
(잘 잤으면 됐지. 당신의 머릴 살살 고르며 고갤 갸웃거린다.) 그렇다고 해야할지. 음, 형은 제가 집착하면 싫어요?
(의중을 꿰뚫어보려는 시선이 네게 잠시 머무른다.) 음... 글쎄. 여태 사랑이라고만 느꼈는데. 수현이는 집착일까봐 걱정이래?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은총선배가 징그러워할..까봐..? (사람의 의중에는 자신이 없어서 말끝이 점점 흐려진다. 그냥 이렇게 물어보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어린 생각을 하며.)
은총이 걔가 자길 그렇게 좋아하는 걸 수현이도 알텐데. (흐흐 웃는다.) 수현이가 은총이를 사랑하나보다.
(그러니까. 연신 고갤 끄덕끄덕.) 질투도 심하시고. (...) 두 분 갈라서시면 수현형 우리 집 놀러오라고 했는데, 진짜 그러시진 않겠죠?
그런 말을... 했어? (어깨 위 얼굴에 멍한 표정이 잔류한다.) 우리집이야 언제 와도 상관 없는데, 그리고 하늘이 두 쪽 나도 은총이는 수현이 옆에 붙어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원래, (미소그리며 속닥인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랬어.
(그 비슷한 말을 하거나 들은 것같은데 아리송한 얼굴로 끄으..덕?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목덜미에 얼굴 묻어버린다.) 싸우면서 크는 거란 말도 있으니까요. 싸우고 같이 오시면 그땐 두 분 거실에 자리 드리고 해결보시라고 해요.
... 너 그러다 거실에 무슨 일 벌이면 감당 할 수 있겠어?
(갸웃? 말싸움? 칼부림?)
섹스.
아.
설마. 남의 집에서요?
둘이서 불 붙으면 또 모르는 일이지.
(붉어진 볼 콕)
(푸시식, 익은 볼 당신의 목덜미에 다시 묻어버리고.) 우리집 방음 잘 되겠죠?
왜애. 이제 와서 부끄러워? (귀엽다. 뒷머리 쓰담쓰담)
(그것도 그렇네. 그 생각은 못한지라. 당신이 쓰다듬어주면 저는 당신의 볼에 쪽) 그보단 그 둘의 소릴 들었을 때 형의 반응이 더 신경쓰여요.
내 반응? 어떨 것 같은데?
(몰라서 묻는 건 아닐건데. 허리에 감은 손으로 당신의 밴드 부근 어르고.) 적어도 어제처럼 주무시진 않겠죠.
흐응, 그래? (여전히 모르는 척, 빙그레 미소지어보이며 너를 마주본다.) 너도 나랑 똑같을거면서.
(여전히 붉은 낯이 식을 줄 모르고 당신의 이마에 제 이마를 톡 기댄다.) 그래서 신경쓰이는 거에요. (알면서. 코끝도 부딪쳐본 다음 한 걸음 떨어진다.) 양치하러 갈까요?
그러자. (기지개 쭉쭉 펴며 욕실로 향한다. 나란히 컵에 꽂힌 두 칫솔 중 파란색을 집어 치약을 주욱 짜 입에 넣는다.) 오늘응, 집에서 영화나 볼까. 아직 밖이 덥더라.
(당신의 옆에 나란히 서서 제 볼을 죽죽 매만져 조금 가라앉혀 보고, 마찬가지로 치약 묻은 칫솔을 입에 문다.) 음...어제 얘기했던 귀신 영화요?
(치카치카, 거울 앞에 서서 양치질을 하는 두 남자.) 으웅, 그것도 좋지. 집 앞에 마트 가서 군것질거리라도 사와야 하나?
(당신의 동의에 제 이를 보던 시선이 도륵 거울 속 당신에게로 흐른다. 그러고보면, 제가 공포영화 못 볼 것 같다고 한 것도, 형이었던 것 같은데.) 이왕 같이 가서 장도 보고 올까요?
가서 이것저것 쇼핑도 할까. 집에 필요한거 아직 덜 샀잖아. 옷 입구 있어, 나도 갈아입고 나올게.
...(양칫물을 뱉으려 고갤 숙인 틈에 당신의 말이 우르르 쏟아진다. 삐걱삐걱 양치를 마저 끝내고 적당한 츄리닝 세트를 챙겨입은 채 거실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하늘색 반팔에 검은 청바지 차림으로 방에서 나온다. 손에 잘그락 차 키를 들고,) 필요한거 좀 생각해봤어?
...과자...? (어째서인지 과자 찬장이 비어있길래 제일 먼저 입에 담아본다. 그 밖에는 음..) 필요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아. 너가 없는 사이 내가 정리를 좀 해서... 그러고보니 설이 너는 제일 좋아하는 과자가 뭐였더라. 일단 약과를 좋아한다는건 기억 나는데. (집을 나서서 앞에 주차된 검은 미니쿠퍼 문을 연다.)
(당신의 물음에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당신의 입술을 훔치곤 조수석으로 포르르 달아난다.) 역시 이게 제일 좋아요.
... (붉어진 볼가를 검지로 긁는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양 조수석에 착석한 너를 한번 보고, 미소지으며.) 나 제대로 맛 못 느꼈어.
(안전벨트를 달칵거리다가 당신을 보는 낯 역시 발그레했다. 몸을 기울여 당신의 볼을 감싸고, 정말 맛이라도 보듯 머금은 상순을 오물거린다.) 이번에는요?
(떨어지기 전에 하순 가볍게 혀로 훑고 다시 운전대 잡는다.) 응, 역시 나도 이게 제일 좋아. (시동 켜고, 후진하며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당신이 떨어지면 저도 모르게 제 하순 만지작거리고. 더한 짓도 했는데 여전히 심장이 간지럽다. 당신이 출발하면 착실히 네비 설정해주고.) 형은, 필요한 거 없어요?
으음, 며칠간 집에서 먹을거 장 봐야지. 전에 갔던 미션, 성과가 본부장 마음에 쏙 들었는지 푹 쉬다 오라며 휴가 받았거든. (깜박이가 점멸하는 소리. 대형 마트 주차장 입구로 들어선다.) 한동안 집에서 요양해야지. 너도 많이 야위어서 잘 먹어야 해.
저기. (마트 입구 바로 앞에 마침 자리가 났다며 전등이 초록색으로 바뀐다. 그걸 콕 가르키면서도, 형과 같이 휴가를 받았구나, 싶었다.) 요양..해야할 정도는 아닌데. 그럼 카트를 끌어야겠네요.
카트 탈래? 태워줄까? (흐흐 웃으며 가리키는 쪽으로 차를 천천히 몬다. 딱 입구 앞. 운이 좋네. 깔끔하게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끈다.)
(아기 아닌데. 별개로 건장한 남자가 카트에 구겨 타고 있는 것도 미관상 좋지 않을 거고.) 위험하니까 물건만 담기로 해요. 다음에 다른 거 태워줄테니까.
(순간 아동용 플라스틱 자동차 카트 안에 몸을 구기고 탄 네 모습을 떠올리고 입술을 꾹 물었다. 차에서 내려 평범한 카트 하나를 빼고.) 다른거? 어떤 거. 혹시 너가 타던 오토바이?
(안경 속 눈동자가 당신을 주욱 보더니 손가락으로 당신의 볼 콕.) 또 수상한 생각. (에스컬레이터 초입에서 앞에서 카트를 당겨주며 고갤 끄덕인다.) 형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
(카트를 사이에 두고 손잡이에 기대어 널 올려다본다.) 한번 타보고싶긴 했어. 오토바이. 네 뒤에서도 그렇고, 그냥 혼자서도.
(연습장이라도 나중에 가야겠네 정말. 그런 계획을 하며 다시 카트를 앞쪽으로 끌면, 진동과 함께 옷이 흐르며 뒷쪽에 미처 지우지 못한 흔적이 보이다 사라진다.)
(흔적 위로 잔류하던 시선은 이내 거두고 어깨 위 옷을 살짝 올려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곁에서 카트를 끌며 속삭이길,) 후드를 입고 오게 할 걸 그랬네. 너무 많이 보이게 만들어서.
아. (앞에만 꼼꼼히 가렸지 뒤는 생각을 못해서. 그러는 당신도 셔츠를 조금만 당겨도 보일 건데. 홧홧한 뒷목을 쓸고 제 상의를 앞으로 당긴다.) 되도록 형이랑 집에 있어야겠어요. 오래 갈 것 같아서...
다음엔 좀 자제할게. (말은 그렇게 하고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볼에 쪽 입맞춘다. 식료품 코너로 들어선다. 부드러운 초코과자가 가득한 선반을 죽 둘러보다가 내린 선택은, 역시 초코파이 상자다.) 난 좀 이런게 좋더라.
안하는 게 더 좋아요. (말 끝나기가 무섭게 말캉한 촉감이 닿으면 고요한 미소가 퍼진다. 저는 그 옆의 커다란 통의 초코칩 쿠키를 카트에 담고.) 부드러운 간식 좋아해요?
응, 초코과자. 칸쵸, 초코송이도. 좀 옛날 과자 입맛인가? (큼직한 통 보고 눈을 끔벅인다. 이거 다 먹을 수 있으려나. 하는 표정.) 설이는 과자엔 호불호 없는거지?
저도 좋아해요. (연신 고개를 도리도리) ...와사비맛 감자칩..먹태 맛... 그런 건 싫어요. 맛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에, 난 그런 것도 잘 먹는데. (맛있잖아, 먹태깡. 생각난 김에 손에 하나 바스락 집다가 네 표정 확인하고 도로 집어넣는다.) 크흠. 육류 코너 보러 갈까.
그럴까요. (어른의 입맛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신의 행동이 사랑스러운 건 어쩔 수 없어서, 지나가다가 당신이 집었던 봉지를 카트에 넣는다.) 점심에 쏘야 맛있던데. 요리는 누구한테 배운거에요?
(결국 담긴 과자봉지로 한번 시선 주고 빙그레 웃는다.) 따로 누구한테 배우진 않았어. 어렸을 때부터 재능 있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결국 다 손맛이 비결이지 뭐. 설이, 닭갈비 좋아해?
손맛이라. (우리 할머니랑 똑같은 이야길 하네. 물론 그때와 달리 저는 당신의 손의 무엇이든 먹겠지만. 여러의미로 정말 무엇이든. 괜히 입 안의 이물이 시끄러운 것 같기도하다.) 오늘 저녁 메뉴인가요?
너가 원한다면. 일단 이것저것 사놓으려고. 양배추 돼지찜이랑... (입술을 우물이며 삼겹살 두 팩을 양 손에 들고 비교해보다가 카트에 담는다. 닭안심도 한 팩 넣고.) 그러고보니 설이 할머니는, 요리 맛있게 해주셨어?
(카트에 기대어 턱을 괸 채 당신이 하는 양을 보다가) 맛..보단 양이 굉장했던 기억밖에 안나요. ...형이 주는 밥 양을 생각하면 형도 만만치는 않지만.
할머니가 손이 꽤 크셨구나. (웃으며 그 옆의 해산물 코너도 기웃거린다. 매운탕 키트, 저거 탐나는데.) 근데 내가 주는 밥도 다 못 먹으면 어떡해. 좀 더 분발하자.
(고갤 끄덕이다가 당신을 따라 카트를 옮긴다.) 형은 돌쇠도 다 못 먹을 만큼 주잖아요. (그리고 저는 돌쇠가 아니었고.) 고기같은 건 냉동했다가 먹어도 되니까, 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설이 너는 돌쇠만큼 먹여도 부족해. (보란듯이 곁으로 다가온 네 옆구리를 살살 어룬다. 결국 매운탕 키트도 카트 안으로. 살살 더 밀면 과일코너가 나온다.) 끝물이긴 한데, 수박 하나 담을까?
하루 권장량 만큼은 먹고 있, 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말대로 끝물인지라 한가득 쌓인 수박이 세일 중이다. 통통, 적당한 것을 두들겨보고.) 밥 먹고, 영화보면서 먹으면 되겠네요.
집에 사이다 남은거 있는데. 동동 띄워서 화채 해먹어도 맛있겠다. (눈을 반짝이며 네가 두드린 수박에 귀기울인다. 맑은 소리 하나 마음에 들어 번쩍 들어 카트에 싣는 모습이, 작은 체구에 비해 꽤 알찬 힘이다.) 저쪽, 리빙템 쪽으로 구경 한번 갈까?
(...형에게 실례일테지만, 상당히, 장난감 쥐 포획에 성공한 고양이같다. 당당하게 물어오는 것까지. 결국 미소를 머금고 끄덕인다.) 그럴까요. (그래서인지, 당신과 구경을 하던 중에 고양이 무드등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네가 우뚝 서서 구경하는 것으로 카트를 돌돌 끌고 가면, 왠 맹- 하게 생긴 말랑한 실리콘 고양이 등이 있었다. 너와 그것을 가만히 번갈아보다가,) 집에 무드등 있는데.
(형은, 저것보단 훨씬 똑똑하고 반짝이지만. 당신의 볼을 괜히 조물조물 해본다. 불이 켜지진 않겠지만.) 그건 저도 알아요. 같은 침실 쓰잖아요.
(맹- 하진 않고 좀 더 말똥한 두 눈이 너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불이 켜지는 대신 눈에 빛이 어른거리는게, 얼추 비슷한 역할을 하려나.) 맞다. 너 많이 뒤척이던데. 혹시 안고 잘 건 안 필요해? (저편으로 턱짓하면, 큼직한 바디필로우가 진열되어있다.)
(사랑스럽다. 저런 고양이보단 훨씬 낭만적이고. 당신의 턱짓에도 당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기어코 품에 꼭 껴안았다가 놓는다.) 안고 잘 것도 있는데. 지금은 집에 없지만요.
(품에 폭 안긴 그 느낌이 좋아서 활짝 웃게 된다. 아, 집에 가고싶어졌다.) 너가 무겁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가 그렇게 푹신하진 않잖아.
(저한텐 역시 당신의 눈동자보다 미소가 더 밝다. 당신의 머리칼을 살살 정리해주고는) 저는 지금 물개인형도 질투하는데. 형 자리를 다른 인형한테 줘버리려고요?
너한텐 내가 준 귀상어씨가 있잖아. (손길이 닿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 눈이 감겼다. 그래도 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으니 침구류 코너를 스르르 지나가고. 다음은 가전제품 코너였다.)
그야 일할 때도 형을 안고 있을 순 없잖아요. (가능하다면 늘 안고 있었을테다. 침구류를 무사히 지나가면 눈에 띄게 기뻐하는 것 같다. 제각각의 모니터들이 저를 향하면, 옛날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너만 원한다면 가끔씩 얌전히 안겨있어 보기도 할게. (밀던 카트 멈추고 밝은 OLED 화면 빛에 둘러싸인다. 너를 한번 돌아보고.) 요술 부릴거야?
네. (안겨있지만 있진 않을 것 같은데... 한 편으론 물음에 답하며 당신의 측두에 제 볼을 기댄 채 모니터들을 본다. 손짓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한 것일 뿐, 집중하면 사실 어렵진 않으니까. 화면이 일제히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다가, 한 화면에서 여명이 들어와 물비늘을 만든다.) 옛날에 저 처음 이능 발현했을 때 이런 데였거든요.
예쁘다. (꼭 물 속에 잠긴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둘의 키보다 높이 쌓인 큼직한 화면이 일제히 반짝이며 일렁이고 있었으니. 너와 함께 아쿠아리움에 간 그 때가 떠올라서 고개를 살며시 기댄 그대로 화면을 감상했다.) 이런 식으로 알게 됐구나. 무섭진 않았어? 남들과 다르다는게...
조금 아쉽긴 했죠. 더 빨리 각성하면 좋았을텐데 정도로. (그랬다면 당신처럼 가족을 구할 수 있었을테니까. 이젠 그리 애석하진 않았다. 당신이라도 구했으니. 모든 모니터가 일제히 움직이던 예전과 달리 모니터가 각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한 수조인 듯 연결되어있는 모니터들은, 우리가 함께했던 그 아쿠아리움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다.) 형은 형이 이능을 가진 게 무서웠어요?
(빨리 자라고 싶었던 너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물속에서 일렁이는 바다거품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는 발현이 너무나도 빨라서. 사람하며, 시간에 등이 떠밀려버린 기분이었는데. 고개를 작게 가로젓는다.) 아니. 이능이 나를 부모로부터 떨어지게 해준 걸. 오히려 좋았어. 바라는건 뭐든 할 수 있었으니까.
(당신이 바라는 것에는 저도 있을까. 만에 하나 없더라도 이젠 상관 없었다. 당신이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검을 가지고 절 찾아온다면 그 칼날을 삼키고 바다로부터 숨길테니까. 그런 욕심을 생각하면 전혀 자라지 못한 듯 싶다. 욕심과 달리 당신을 어찌 위로해야할지 몰라서 당신과 모니터 사이를 가로막고 다시 품에 안는다. 거품처럼 화면은 원상태로 돌아간다.) 이제 우리집에 갈까요? 가서 같이 밥먹고, 영화보다가, 씻고 자요.
(품에 얼굴을 묻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여기다. 멀리멀리 돌아왔지만, 한 때는 제 손으로 불을 질러 없앨 뻔 하기도 한, 이곳이 바로 나의 집. 저를 안으로 들여준 이를 바라보며 베시시 웃어보였다.)